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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신동욱 앵커의 시선] 이런 적이 또 있었던가요

등록 2022.01.18 21:52 / 수정 2022.01.18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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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을 내려오는 돌미역 특산지, 울산 북쪽 바닷가 마을들은 11월 입동 무렵이면 호미 가는 소리로 요란합니다.

해녀들은 호미와 함께, 날 달린 긴 막대를 들고 물속 미역바위에서 일주일 넘게 일합니다.

그런데 늘 빈손으로 나옵니다. 돌미역을 따는 게 아니라 종일 바위만 청소한 겁니다.

김을 매듯 바위에 붙은 조개와 잡초를 긁어내 미역 포자가 잘 달라붙고 단단히 뿌리내리게 하는 '기세작업'입니다.

요즘 같은 한겨울 진도에서는 '갯닦기'라 하고, 제주도에서는 '바당 풀 캐기' 라고 하지요.

또 여름이면 썰물 때 뜨거운 햇빛에 미역이 데쳐지지 않도록 바닷물을 끼얹어주는 물 주기도 거르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거저 떨어지는 게 아니라 공들여 미역농사를 짓는 겁니다.

그렇게 보살피고 가꾸지 않고 계속 베어내기만 했다면 황금거위 같은 미역밭도 벌써 망가져 텅 빈 바위만 남았겠지요.

오늘이 대선을 꼭 50일 앞둔 날이었습니다. 예전 D 마이너스 50일 같으면 대체로 승부를 가늠할만했습니다. 이 무렵 여론조사 1위가 대통령이 된 예가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혼전이 엎치락뒤치락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안갯속' 선거판입니다.

무엇보다 유권자 시선을 휘어잡는 거시적, 논쟁적 이슈가 실종됐습니다.

대선을 지배하는 것은, 김건희 씨 녹취록 공방 같은 곁가지 가십성 화제들뿐이고 찾자면 하나가 더 있습니다.

표만 된다면 누가 진보고 누가 보수인지 헷갈릴 만큼 비슷비슷한 공약을 다투어 내놓는 '표퓰리즘' 입니다.

부동산정책 기조만 해도 양대 후보가 주택 공급, 세금 완화로 일치하고, 병사 월급 인상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왔습니다.

그렇듯 나라 곳간 사정은 아랑곳 않고 돈을 풀어 환심 사겠다는 약속들만 줄을 잇습니다.

국민연금을 이대로 뒀다가는 90년생부터 한 푼도 못 받는다는데 누구도 연금개혁을 말하지 않습니다.

정부가 6.25 전란통 이후 처음으로 1월 추경을 들고나온 것도 예삿일은 아닐 겁니다.

철학자 칼 포퍼는 말했습니다.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시도가 늘 지옥을 만들어 낸다"고. 하지만 민심을 낚으려는 거미줄도, 눈 밝은 국민 앞에서는 헛된 그물일 뿐입니다.

거미의 속셈을 눈치채는 푸른 소나무, 맑은 이슬과 햇살 아래서는, 거미도 차마 거미줄을 칠 수가 없습니다.

1월 18일 앵커의 시선은 '이런 적이 또 있었던가요'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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