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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취재후 Talk] "피격 공무원이 해상 강도인가요?"…해경의 이상한 계좌조회

등록 2022.01.19 17:47 / 수정 2022.01.1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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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피격 공무원 이 모 씨의 아들이 17일 작성한 편지


▲“금융 사기범 변호 맡을 때도 받아 본 적 없던 조회”
최근 한 변호사로부터 제보를 받았습니다. “과거 해경이 내 은행 계좌 명의자가 누군지 조회를 한 적 있다. 당시 너무 황당해서 해경에 물어봤더니 ‘피격 공무원 사건 수사 때문에 그런 거니 신경 쓸 필요 없다’라는 답을 받았다. 그런데 최근 공수처의 무차별 통신 조회를 지켜보며 나도 비슷한 피해자 아닌지 생각이 들어서 제보를 한다.”

A 변호사는 지난 2020년 9월 서해에서 북한 피격에 사망한 공무원 이 모 씨의 개인 회생 사건을 수임했습니다. A 변호사는 지난 2020년 5월 이 씨를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당시 이 씨는 파산 신청을 통해 빚을 탕감 받고자 했고, A 변호사는 수임료를 받고 사건 처리를 맡았습니다. A 변호사는 “이 씨가 공무원으로 안정적인 수입을 가지고 있어 파산 신청을 하는 사람 중에는 형편이 나은 편이였다”라고 회상했습니다.

하지만 이 씨는 결국 북한 피격에 사망합니다. 피격 사건이 있은지 10일 후쯤 해경은 A 변호사의 ‘금융 거래 정보’를 확인합니다. A 변호사는 “금융 사기범 사건도 다수 수임해 봤는데 수사 기관이 내 계좌 정보를 확인해 간 것은 처음이라 깜짝 놀랐다.”라고 취재진에게 전했습니다. 결국 TV조선은 어제(18일) 해경의 ‘이상한 계좌 조회’에 대한 단독 보도를 했습니다.


 [뉴스9/단독] 해경, '피격 공무원' 변호사 계좌조회…열흘 뒤 "빚 때문에 월북" 발표
https://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22/01/18/2022011890121.html



해경이 TV조선 보도 이후 낸 해명자료


▲“피격 공무원 계좌 내역만 확인했지 A 변호사 계좌 추적은 한 적 없다”
해경은 TV조선 보도가 나온 이후 바로 해명자료를 냈습니다. 해경은 피격 공무원의 계좌 내역을 확인한 것은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A 변호사의 계좌를 들여다본 사실은 없다’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피격 공무원 계좌에서 A 변호사와 거래한 내역이 있어서 확인했던 차원이다. A 변호사의 ‘계좌 추적’을 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사실 TV조선이 “해경이 A 변호사를 ‘계좌 추적’ 했다”라고 보도한 적이 없습니다. 만약에 그랬다면 훨씬 더 심각한 사찰로 해경 관련자들이 수사권 남용으로 처벌받을 수도 있는 사안입니다.

그럼에도 보도를 하게 된 이유는 해경이 ‘피격당한 이 씨의 계좌를 통째로 들여다봤고’ 그 과정에서 A 변호사는 자신의 개인 정보 일부를 수사 기관에 조회 당했기 때문입니다.


해경의 피격 공무원 사건 수사 결과 브리핑


▲“피격 공무원이 해상 강도?”…해경의 계좌조회는 적법했나?
해경은 지난 2020년 10월 피격 공무원 이 씨에 대한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해경은 “공무원 이 씨는 출동 전·후와 출동 중에도 수시로 도박을 하는 등 인터넷 도박에 깊이 몰입돼 있었는데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현실 도피 목적으로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밝혔습니다. 또 “이 씨의 구체적인 채무 액수는 3억 3천만 원인데 이 중 인터넷 도박 빚이 2억 6800만 원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해경이 이런 구체적인 브리핑을 할 수 있던 것은 이 씨에 대한 전방위 계좌 조회 덕분입니다. 또 앞서 TV조선이 보도했던 A 변호사 등에 대한 개인 정보를 조회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해경이 사망한 이 씨의 계좌를 조회할 권한이 있던 것일까요? 참고로 해경은 피격 공무원 이 씨가 파산 신청을 거치면 빚을 9000만원 대로 탕감 받을 수 있던 것은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1달 전 인천경찰청은 이 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해양경찰청과 인천해양경찰서를 압수수색했습니다.

한 전직 검찰 관계자는 “이 씨가 해상 강도도 아니고 그렇다고 금괴 밀수범도 아니다. 오히려 북한 총에 맞아 죽은 피해자인데 계좌 조회를 당할 이유가 있느냐? 계좌 조회는 범죄 수사를 위한 것인데 이 씨가 무슨 죄를 지었냐?”라고 되물었습니다. 다른 법조계 관계자도 “북한 피격에 사망한 피해자를 해경이 수사권 남용에 가까운 계좌 조회를 한 뒤, 전 국민 브리핑으로 개인의 명예까지 두 번 죽인 것이다.”라고 꼬집었습니다.

어업지도선에 남아 있던 피격 공무원 이 씨의 공무원증

 
▲故 박원순 전 시장 영장은 기각했던 법원…피격 공무원은 발부?
해경이 피격 공무원 이 씨의 계좌를 임의로 조회한 것은 아닙니다. 법원이 발부한 ‘적법한 영장’을 가지고 계좌를 조회했습니다. 해경 역시 취재진에게 “변사 사건 처리를 위해 영장을 받아 이 씨의 계좌를 적법하게 조회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과 비교해 보면 조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당시 경찰은 박 전 시장의 휴대폰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합니다. 하지만 서울북부지방법원은 “통신 사실 확인자료 제공 요청도 강제 수사로서 범죄 수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할 수 있다”라며 영장을 기각했습니다. 박 전 시장이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성범죄 사건은 ‘공소권 없음’처리됐고 결국 범죄 수사를 위한 통신 조회가 아니기 때문에 영장을 내줄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면서 “변사자 사망 경위 관련, 타살 등 범죄와 관련되었다는 점에 대한 소명이 없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결국 성범죄 여부 등은 박 전 시장의 변사 수사와는 관련이 없다는 판단입니다.

같은 논리로 이 씨에 대한 계좌 조회가 과연 이 씨의 변사를 수사하는 것과 관련이 있던 것일까요? ‘도박 빚이 많은 사람은 추운 가을 바다를 헤엄쳐서 월북한다’라는 것이 당연히 연결되는 명제라 필요했던 수사였을까요? 결국 법원이 왜 이 씨 계좌에 대한 영장을 내줬는지 의문을 가지는 의견도 나옵니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이 씨 사망에 ‘북한은 무고하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국가 기관이 수사권을 남용한 사례”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국가 권력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가 법원이다. 그럼에도 우리 법원이 국가 권력이 한 개인을 ‘도박에 미쳐 빚이 많은 월북자’로 매도 될 수 있는 계좌 조회를 도운 것인데, 비판받아야 마땅하다”라고 지적했습니다. / 주원진 기자, 한송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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