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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신동욱 앵커의 시선] 폭풍 속의 맹세

등록 2022.01.26 21:50 / 수정 2022.01.26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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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아버지 조지 6세는 심한 말 더듬기를 피나는 노력으로 극복합니다. 이를 통해 소심한 왕자에서 현명한 군주로 거듭나지요.

2차대전 때 그는 난방이 끊긴 왕궁에서 식량을 배급받으며 국민과 고통을 함께했습니다.

서재에는 '책에게 부탁하는 말'을 써 붙여놓고 스스로를 다잡았습니다. "달을 보고 울며 빌지 않게 엎질러진 우유를 후회하지 않게 가르쳐 달라"고.

심해 탐험대가, 머릿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물고기를 만났습니다.

"나는 해구에 사는 통안어야. 우린 이런 것도 할 수 있다"

투명한 유리 개구리와 얼음 고기처럼 세상에는 속 보이는 인간이 많습니다.

여측이심이라는 말대로 간사한 게 사람 마음입니다. '같은 측간에 두 마음', 그러니까 '화장실 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는 얘기입니다.

영어권에선 "위험이 지나가면 신은 잊힌다"거나 "폭풍 속 맹세는 고요 속에 잊힌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반성의 뜻으로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논란이 있었던 3월 재보궐 선거 세 곳에도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지역구 4연임을 막고, 윤미향 이상직 의원 제명안도 처리하겠다고 했습니다. 늦었지만 그리 틀리지 않은 얘기들입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입니다. 작년 서울-부산 보궐선거를 앞두고 밑도 끝도 없이 "잘못했다"고 고개를 숙이던 그 장면들 말입니다.

두 장면의 밑에 깔린 공통점은 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입니다. 그런데 보궐선거 끝나고 나서 어떻게 됐던가요. 일부 초선 의원들이 선거 후에도 반성에 나섰지만 당 안팎의 돌팔매질에 곧바로 사과해야 했고, 거대 여당은 다시 입법 폭주를 시작했습니다.

당헌까지 뒤집으며 후보를 냈던 일, 절대 합당 안 한다던 위성정당과 합친 일도 어물쩍 넘어갔습니다. 선거 때 국민에게 한 사과와 약속을 화장실 가는 것 정도로 생각하지 않고서는 어떻게 이럴 수가 있겠습니까?

윤미향 이상직 의원의 경우는 또 어떤가요. 민주당은 윤 의원에 대한 의혹 제기를 '친일 모략극'으로 몰았고, 정의연에 대한 비판을 틀어막는 이른바 윤미향 보호법까지 내놓았습니다.

피의자 이 의원이 주장한 언론징벌법을 입법 직전까지 밀어붙였습니다.

두 사람은 진작에 국회 윤리위에 제소됐지만 논의 한번 안 하고 뭉갰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제명을 하겠다는군요.

요즘은 잘 안 씁니다만 '비를 긋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갑자기 내리는 비를 잠시 피해, 비 그치기를 기다린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지금 이 소낙비가 지나가면 또 어떻게 안면을 바꿀지, 정치란 원래 이런 것이라고 위안합니다만 그래도 참 슬픈 일이지요.

1월 26일 앵커의 시선은 '폭풍 속의 맹세'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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