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이메일보내기
  • URL복사
정치

[취재후 Talk] 진실을 말하는 이들에게 고통을 준 그들의 최후

등록 2022.01.28 11:15 / 수정 2022.01.28 12:05

  • 페이스북
  • 트위터
  • 이메일보내기
  • URL복사

지난 2019년 10월 12일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일대에서 검찰 개혁을 촉구하고 조국 법무부 장관을 지지하는 집회와 조 장관을 규탄하는 맞불 시위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 조선일보DB

대한민국이 조국 사태로 시끄럽던 2019년 10월, 기자는 '조국 수사' 취재를 위해 서초동에 있었다. 그날은 이른바 '조국 수호 집회'가 예정된 날이었다. 조국 전 장관의 '민낯'이 어느 정도 드러나고있던 상황이라 '사람들이 얼마나 모이겠나'라고 생각했지만, 짐작은 어림없이 빗나갔다.

'딱 봐도 100만'이라는 모 방송사 사장의 말엔 동의할 수 없지만 그야말로 '구름 인파'였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수보다 더 놀랐던 것은 집회 참가자들의 면면이었다. 아이들 손을 잡고 온 젊은 부부부터 회사원, 젊은 대학생들까지 얼굴에 '깨어있는 시민'이란 자부심이 잔뜩 묻어있던 그들은 누가 봐도 보통 사람들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 잘못된 것인가', '그러지 말자고 다짐해놓고 나도 모르게 진영 논리에 휩쓸려 있던 것인가'. '정신적 아노미'가 왔다. 한참을 정신 못 차리고 있던 즈음 판단의 기준을 잡아준 건, 진보 진영 내부의 지식인들이었다. 진중권 전 교수의 일갈이었고, 강준만 교수의 책이었고, 최장집 교수의 비판이었다. 배신자라는 지탄을 받았던 권경애 변호사와 김경율 회계사도 있었다.

반면, 조 전 장관은 의혹이 불거진 처음부터 끝까지 지식인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 보여준 표상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장관 청문회 땐 수사에 협조할 것이라고 했지만 막상 수사가 시작되자 법정에서 말하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재판에선 "형소법 184조에 따르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절정은 지난 5월 발간된 책 '조국의 시간'이었다. 책에서 조 전 장관은 입시비리에 대해선 도의적이나마 책임을 인정했지만, 사모펀드 의혹에 대해선 "정경심 교수 1심 재판에서 사모펀드 횡령에 무죄를 선고했다"며 결백의 취지로 주장했다. 일부 무죄가 나왔다는 걸 악용한 '질이 매우 나쁜 거짓말'이었다. 사모펀드 비리와 관련해 '코링크PE 횡령' 부분만 무죄, '미공개 정보 이용', '재산등록 미신고', '차명 거래' 등 핵심 의혹은 이미 유죄가 선고됐었다. "진실을 말하는 이들에게 크나큰 정신적 고통을 줬다"는 명 판결문이 그때 나왔다.

대법원이 이 1심 판단을 최종 확정하면서 '조국 사태'를 둘러싼 진실공방은 일단락됐다. 비슷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조국 전 장관에게도 영향을 줄 것이다. 조국 일가의 완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그 사이 가뜩이나 갈라져있던 정치권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다. 진실은 돌아가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밝혀진다는 교훈을 얻었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혼란스런 아귀다툼을 '사필귀정'으로 이끈 건 소위 말하는 '보수언론'이나 정치인들이 아니었다. 붉은 색은 붉다고 파란 색은 파랗다고 말할 수 있는 상식적인 지식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는 진영을 넘어선 가치다. 뻔한 말을 굳이 기록으로 남기는 이유는 그 숭고한 '족쇄'를 스스로에게도 미리 채워놓기 위해서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