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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대통령의 선택적 분노

  • 등록: 2022.02.11 23:13

  • 수정: 2022.02.11 23:27

군산의 명물 박대입니다. 정약전이 '박접'이라고 썼듯 납작하고 얇아서 박대지요. 그래서 "문전박대 받는 박대"라는 우스개도 있습니다. 하지만 먹어보면 하도 맛있어서 '문전대박'이라고 감탄한다고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군산을 방문했을 때 점심상에 오르기도 했지요. "문 대통령이 문전박대 받는 것이 소망"이라는 청와대 참모가 있습니다. "퇴임하려고 문 앞에 섰을 때 박수 받으며 떠났으면 좋겠다"는 얘기였지요. 박대가 받는 찬사 '문전대박'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대통령 이후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대통령으로 끝나고 싶다.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엊그제는 "노무현 대통령 퇴임 후 비극적인 일을 겪고도 우리 정치문화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노 대통령에 대한 부채의식 이나 트라우마 같은 게 느껴집니다.

대선 막바지에 대통령과 유력 야당 후보가 정면 충돌하는 초유의 사태가 터졌습니다. 윤석열 후보가 "집권하면 전 정권 적폐수사를 하겠다"고 말하면서 점화된 '적폐대전'의 불길이 심상치 않습니다. '적폐 청산'은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구호입니다. 두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2백여명이 구속됐고, 다섯 명은 수사를 받다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그 청산작업을 지휘했던 윤 후보가 '적폐'를 말한 것은 진중하지 못했습니다. 불법과 비리가 있다면 법에 따라 처리하면 될 일입니다. 여권에선 "정치보복 선언"이라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직접 대통령이 나섰습니다. "현 정부를 적폐수사 대상, 불법으로 몰았다"며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의도했든 안 했든, 한 달도 안 남은 대선 한복판에 선 겁니다.

청와대는 선거 개입이 아니라 당연한 반론권 행사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당장 여권은 노무현 대통령까지 소환하며 지지층 결집 계기로 삼을 태세입니다.

대통령 역시 이런 파장을 예상하지 못하진 않았을 겁니다. 발단은 윤 후보가 제공했지만 뻔히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청와대의 태도 역시 하나도 달라진 게 없습니다.

적폐청산을 전가의 보도처럼, 정국 운영의 만능 열쇠처럼 휘둘러 온 현 여권이 적폐란 말에 왜 이렇게 화들짝 놀라는 지도 사실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 정부 역시 잘못된 일이 있었다면 문 대통령 퇴임 전이든 후든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법적으로 책임 질 일 있으면 그 역시 물론입니다. 그러나 정치 보복을 하려 든다면 어느 누구든 국민들의 냉혹한 평가를 피하지 못할 겁니다.

오히려 현 정부가 적폐 청산이라고 주장하며 밀어 붙인 일들 가운데는 정치 보복의 냄새가 짙게 나는 사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때 대통령은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불 같은 분노를 표시하는 이유를 많은 국민들은 의아해 하고 있습니다.

2월 11일 앵커의 시선은 '대통령의 선택적 분노'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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