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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신동욱 앵커의 시선] 길들여지다

등록 2022.05.05 21:52 / 수정 2022.05.05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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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발자크는 사진처럼 생생하게 인간 군상을 그려내 '문학적 초상화가'로 불렸습니다. 그런데 나이 서른이 되자 정작 자신의 초상화는 그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다 서른일곱이 돼서야 나온 게 이 초상화입니다. 주먹코에 이중 턱을 한 발자크의 모습에 한 여성잡지가 탄식했습니다.

"환상이 깨지는구나. 다들 '우리의 발자크를 돌려달라'고 울부짖게 됐다"고.

여성들이 머릿속에 그려뒀던 이미지와는 딴판이었던 것이지요. 미지의 얼굴은 호기심, 신비로움을 부르고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그것도 흔히, 더 잘생긴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고 합니다. 배트맨을 비롯한 수퍼 영웅들이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 것도 그래서이지요. 서부 영웅 론 레인저를 초기에 연기했던 이 배우는 평소에도 가면을 쓰고 익명으로 지낸다는 계약서에 서명해야 했습니다.

마스크가 일상의 가면이 된 코로나시대의 신조어가 마스크와 사기꾼을 합친 '마기꾼'입니다. 요즘 SNS 여기저기서 '마기꾼 대회'가 열려, 마스크 쓴 얼굴과 벗은 얼굴의 놀라운 반전에 웃음보가 터지곤 합니다. 바깥에서는 마스크에서 해방된 지가 사흘이 지나도록, 벗고 다니는 사람을 보기가 힘듭니다. 아직은 불안하고 어색하고 조심스러운 모양입니다. 벗어도 된다는 정부 말이 미덥지가 않은 것이지요. 어쩌면, 마스크 쓰는 외출에 2년 넘게 길들여진 게 더 큰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세먼지 공습경보가 울릴 때마다 거리에 늘어서는 하얀 마스크 행렬을 보며 시인은 구름을 떠올렸습니다. "사람들은 어디 갔나. 구름 덮인 얼굴만 걸어 다녔다. 살아 있다는 착각은 아닌지 나를 만져본다." 그런데 어딜 가나 마스크 쓴 얼굴밖에 없는 코로나 풍속도를 보며 시인은 차라리 잘됐다고 자조 섞인 위안을 합니다. "전철 안이 조용해졌다. 표정들이 사라졌다. 예쁜 눈만 남았다. 비로소 공평해졌다" 꼭 코로나가 아니어도, 우리는 어느덧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더 편한, 익명의 세상에 살고 있는 게 아닐까요.

영어 '마스크(mask)' 에는 가면, 복면같이 '가린다'는 의미만 있지만, 우리말이 된 외래어 '마스크'에는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이 '얼굴 생김새'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뇌리엔 이미 가면이, '제2의 내 얼굴'로 깊이 새겨져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마스크를 벗어라 해도 벗지 않는 것은, 분자로 쪼개지다 못해 원자로 뿔뿔이 나뉘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 아닐는지요.

5월 5일 앵커의 시선은 '길들여지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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