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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신동욱 앵커의 시선] 아는 사람의 함정

등록 2022.05.17 21:50 / 수정 2022.05.17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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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입단속을 단단히 시켰더라고…"

백악관 집사의 아내 오프라 윈프리가 불평했듯, 집사는 입이 무거워야 합니다. 대통령 내외의 내밀한 사생활을 속속들이 꿰고 있기 때문이지요.

"아무것도 안 듣고, 안 본다. 서빙이 전부다"

백악관 집사는 평직원이지만, 우리 대통령실에는 '집사'로 불리는 총무비서관이 있습니다. 곳간 열쇠를 쥐고서 살림을 꾸리는 곳간지기여서 대통령들은 오랜 세월 함께 지낸 측근을 기용하곤 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홍인길 총무수석은 상도동서부터 살림을 도맡았던 6촌동생이었고,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의 총무비서관은 오랜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돈 문제에 얽혀 끝이 좋지 않았던 이들이 많았지요.

윤재순 총무비서관은 검찰 수사관 시절부터 윤석열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이른바 복심입니다. 독특하게도 요즘 말로 '부캐릭터'가 시인이지요.

그런데 20년 전 시가 소환되면서 왜곡된 성 인식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전동차에서만은 짓궂은 사내아이들의 자유가 보장된다"며 지하철 성추행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이 시입니다.

두 시인이 공개적으로 내린 평가는 일단, 표현이 서툴고 유치하고 수준이 낮다는 데 일치합니다. 하지만 "실패한 풍자시일 뿐 성추행 옹호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견해와 "잠재적 성범죄자 특징이 보이는데 비서관으로 앉혀야 되느냐"는 비판으로 갈립니다.

시란 독자가 해석하는 것이기에 일도양단하기가 어렵습니다만, 그는 두 차례나 회식에서 부하 직원을 성추행해 경고와 인사조치를 받은 전력이 있습니다.

수시로 성희롱성 발언을 해 'EDPS'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조악하고 노골적인 시를 괜히 쓴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그를 굳게 감싸고 있고, 대통령도 논란에 즉답을 피했습니다.

"다른 질문 없지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수사관 출신 측근은, 인사를 총괄하는 인사기획관과 '문고리 권력'으로 불리는 부속실장에도 기용됐습니다.

공직기강비서관, 법률비서관, 인사비서관 같은 핵심 요직도 가까운 검사 출신으로 채워졌습니다. 평생 검사였던 대통령이어서 그럴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보는 입장에선 아슬아슬하게 느껴 집니다.

나중에 잘못되면 그 때 가서 지적해도 늦지 않다는 반론도 물론 할 수 있지요.

지만 나랏일을 시험 삼아 해 볼 수는 없는 일입니다. 불행의 씨앗을 보면서도 머뭇거렸다가 빚어진 참사의 기억은 일일이 소환하지 않겠습니다.

이미 거칠고 황당한 언사와 낯뜨거운 대통령 부인 예찬을 늘어놓았던 비서관을 솎아냈듯, 이 쯤에서 한번쯤 숨도 고를 겸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는 용기를 청합니다.

5월 17일 앵커의 시선은 '아는 사람의 함정'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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