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의 시작
펜션 임대 수익을 보장한다면서 3년이 지나도록 펜션 공사조차 시작하지 않아 고소당한 분양업체 대표가 최근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지난 2020년 경찰이 무혐의 처분을 한 사건이었는데, 검찰이 판단을 뒤집었고 법원도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2년 동안 경찰, 검찰, 법원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20년 11월 취재진에게 한 이메일 제보가 들어왔다. 가평에 펜션을 짓고 임대 수익을 벌기 위해서 지난 2017년 가평의 한 분양업체와 계약을 했는데 3년이 지나도록 펜션 공사는 시작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제보였다.
피해자가 10여명에 달하고 전체 피해 액수도 20억대에 달한다고 했다. 취재의 필요성이 느껴져 피해자 접촉부터 시작했다.
제보자 48살 허 모 씨는 실제 분양업체와 계약을 해서 계약금 등 5천만 원을 건넸지만 펜션 공사는 중간에 멈춰버렸고, 땅의 소유권도 넘겨받지 못했다. 허 씨는 지난 2019년 민사소송을 통해 승소 판결을 받아냈지만 투자한 돈의 대부분을 돌려받지 못했다.
2억 원 넘는 돈을 투자한 46살 박 모 씨도 마찬가지였다. 2017년부터 같은 업자와 계약했는데 공사는 시작 안 했고 땅에는 2억 원이 넘는 근저당이 설정된 상태였다.
이 사건은 취재진이 2020년 11월 28일에 뉴스7을 통해 단독 보도했다.([단독]'펜션 지어준다고 돈 냈는데 3년 넘게 감감 무소식'…20억대 피해 속출)
■경찰의 무혐의 처분
피해자들은 지난 2020년 2월 분양업체 대표인 김 모 씨를 사기 혐의로 경기 가평경찰서에 고소했다.
하지만 수사는 속도를 내지 못했고, 피해자들은 답답한 마음에 여러 번 경찰 수사팀을 찾아가기도 했다. 수사가 6개월 넘게 지지부진하자, 한 피해자는 가평경찰서 청문감사실에 문제를 제기했다.
가평경찰서 청문감사실은 2020년 10월 27일 담당 수사관이 사건수사를 진행하는 데 있어 사건지연처리 등 업무를 소홀한 점이 인정되어 담당 수사관에게 경고 조치를 내렸다.
경고 조치는 징계는 아니지만 수사관의 업무 소홀을 담당 경찰서가 스스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조치였다.
하지만 경찰은 결국 수사 9개월만인 2020년 11월 피해자들이 고소한 분양업체 김 대표에게 사기 혐의가 없다며 무혐의 종결 처리했다.
고소인들을 기망하며 분양계약을 체결하고 분양대금을 받았다고 보기 어렵고,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경찰 판단 뒤집은 검찰
경찰이 검찰로 사건을 넘긴지 10개월 뒤.
의정부지검은 지난 2021년 9월 분양업체 김 대표를 사기죄로 기소했다.
검찰은 공소장을 통해 김 대표는 지난 2017년 9월 가평군의 펜션을 분양할 업자를 모집했고, 이때 박 씨에게 완성된 펜션을 자신에게 임대해주면 매달 임대 수익을 한 채당 70만원씩 보장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을 믿은 박 씨는 김 대표에게 토지와 펜션에 대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과 중도금 명목으로 6000만원을 건넸다.
하지만 김 대표는 2018년 4월쯤 피해자 박 씨에게 "2차 분양분은 허가가 늦어질 것 같다"며 "매매대금 전액을 완공 전에 미리 완납하면 펜션을 바로 완공해주겠다"고 속였다. 이에 박 씨는 잔금 명목으로 1억5천8백만 원을 송금했다.
검찰은 김 대표가 이미 토지에 채권최고액 2억2천5백만 원의 근저당권과 지상권을 설정했기 때문에, 피해자에게 약속한 대로 토지 소유권을 이전해주고 펜션 임대 수익을 지급할 능력과 의사가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의 손을 들어준 법원
우여곡절 끝에 이 사건은 재판으로 이어졌다.
의정부지법 1심 재판부는 지난 11일 검찰의 구형 그대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검찰의 공소장에 나온 논리와 사실관계도 모두 인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약속대로 이 사건 부지에 정상적으로 펜션을 지어 피해자에게 분양한 후 임대사업을 하는 것이 실제로 어렵다는 점을 미필적으로 인식했고 피해자에게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아니한 기망행위도 인정 된다"고 적시했다.
또 "피해금액이 크고 피해자들로부터 용서받지 못했고 피해자들이 장기간 지속된 피해로 피해 금액으로 산정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심하게 받고 있는데도 피고인은 이를 부인하며 반성하지 않고 있다"며 선고 이유를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피해자들에게 피해 회복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 실형 선고만 하고 법정 구속은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경찰이 무혐의 종결 처분한 사건이 검찰에 의해 뒤집히고 유죄 선고로 이어졌다.
당시 사건을 담당한 경찰 수사 책임자는 취재진에게 "그 사건이 전혀 기억에 나지 않는다"는 대답만 되풀이 했다.
■'견제와 균형'
경찰이 나름의 법적 근거와 논리로 무혐의 종결 처분을 할 수 있겠지만, 경찰의 판단이 맞는지를 검찰이 한 번 더 들여다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번 사건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경찰의 최초 무혐의 처리 그대로 사건이 종결됐다면, 피해자들은 재판부의 판단을 받아 볼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2021년 1월부터 사기 등 민생 범죄는 예전처럼 검찰이 직접 수사를 할 수 없다.
또 이른바 '검수완박'으로 검찰은 고발 사건에 대해 경찰에 보완수사 요구를 할 수 없어져 경찰의 재수사를 강제할 수도 없다.
아동학대, 장애인학대, 성범죄 등 공익 관련 범죄에서 고발인의 역할이 중요한데, 고발인이 있는 사건은 경찰이 무혐의 종결 처분하면 검찰이 개입할 방법이 없다.
피해자의 고소·고발 사건을 주로 대리해온 이유진 LKB&파트너스 변호사도 "고소인·고발인 입장에서는 검사의 판단을 받아보는 게 권리라고 볼 수 있는데 경찰 단계에서 종결되면 권리를 빼앗기는 것"이라고 밝혔다.
펜션 분양 사건의 피해자들은 분양업체와 계약을 한 지 5년이 지나고 유죄 판결도 받았지만, 아직 계약금과 중도금 등 피해 금액을 돌려받지 못하며 고통을 겪고 있다.
유사한 피해와 억울함을 호소하는 국민이 더 없어야 한다.
수사기관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 다시 떠오르는 이유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