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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신동욱 앵커의 시선] 수고하셨습니다

등록 2022.05.18 21:53 / 수정 2022.05.19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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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보니까 예쁘지요?"

'트로트 퀸' 송가인이 전남 벌교 꼬막축제에서 스스로 얼굴 평을 합니다.

"사람은 자고로 복스럽게 생겨야지요. 그쵸? 사람은 귄이 있어야 돼요 (맞아요. 네)"
"가인이는 귄이 쫙쫙 흐르지라"

그가 '귄'을 뽐낼 때마다 관객들은 '맞다'고 맞장구를 칩니다. '귄'은, 오묘한 뜻을 품은 전남 방언입니다. 사전에 '귀염성'을 뜻한다고 돼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귄은 잘생긴 것과 상관이 없습니다.

딱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사람을 끄는 은근한 매력, 곰삭은 인간미, 속 깊은 정, 한결같은 편안함 같은 것들을 아우르지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시구처럼 말입니다.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의 목소리를 전문가가 분석한 적이 있습니다. "재난 속에서 국민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최상의 전달음"이라고… "평균치보다 조금 낮고 느린 말이 차분함, 신중함, 신뢰감을 지녀, 듣는 사람이 협조할 마음이 생기게 한다"고 했지요.

4년 열 달을 한결같이 방역전선의 선봉에 섰던 그가, 늘 그랬듯 조용하게 퇴장했습니다.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이렇게 의료진에 경의를 바치는 것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그는 코로나 경보가 '심각'까지 가자 단발머리를 더 짧게 잘랐습니다. "이제 머리 감을 시간도 아껴야 한다"고 했지요. 하루 얼마나 자느냐는 질문에 "한 시간보다는 더 잔다"고 했습니다.

낙상으로 다친 눈이 부은 채, 어깨에 깁스를 하고 브리핑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흰머리가 늘어가는 사이, 쑥스럽게 꺼냈던 소망도 어느덧 한결 힘이 실렸습니다.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일상회복을 시작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됐습니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그는 문재인 정부 방역정책의 상징적 인물로 떠올랐습니다. 영광은 물론 착오와 혼돈, 실패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았습니다.

세상에는 한 줌 알량한 권력을 쥐었다고, 유리창 긁듯 날카로운 소리를 질러대며 설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귄이 없는 무리들 속에서 그의 목소리는 나직하되 울림이 컸습니다. 실제로 코로나와 싸우는 동안 정치방역이냐, 과학방역이냐를 두고 논란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없었다면 그 논란은 훨씬 더 컸을 거란 점에선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듯 하고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카뮈 소설 '페스트' 한 대목을 생각합니다. "전염병과 싸우는 유일한 길은 품위를 잃지 않는 일이며, 그 품위는 내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그는 "유행이 진행 중인데 무거운 짐을 남기고 떠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고 했습니다. 작은 몸집으로 드리운 그의 긴 그림자가 오래 남을 듯합니다.

5월 18일 앵커의 시선은 '수고하셨습니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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