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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신동욱 앵커의 시선] 손세이셔널

등록 2022.05.23 21:51 / 수정 2022.05.23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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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이 현란한 드리블로 마트 진열대 사이를 질주합니다. 

"소니(손)가 돌파했습니다! 수비수를 제쳤습니다! 슛을 날립니다!"

손흥민이 멋진 슈팅으로 시리얼 탑을 무너뜨리자 중계팀도 손님들도 환호합니다. 영국 공영방송 BBC가 만든 프로그램 홍보영상입니다.

소아암 어린이들을 돕는 자선광고에서는 아침상을 차리며 요즘 말로 '아재 개그'를 선보입니다.

"햄은 역시 토튼햄이지"

손흥민의 이적시장 가치는 8천만 유로, 천억 원이 넘습니다. 구단 급여만, 세금 40퍼센트 떼고 한 달에 6억6천만원씩 받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릴 적 한때 컨테이너에서 살았을 만큼 어렵게 자랐습니다.

독일 함부르크 유소년팀에 입단해 구단 숙소에서 살던 열여섯 살 손흥민은 한국식당에 갈 돈이 없었습니다. 우리 음식이 너무 먹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한식 사진을 검색해 입맛을 다셨습니다.

아버지가 모든 일을 접고, 밥솥과 반찬 챙겨 들고 독일로 날아왔습니다. 값싼 모텔에 묵으며 밥을 해 먹이며 뒷바라지했습니다.

프로축구에서 뛰었던 아버지 손웅정씨가 아들을 호되게 훈련시킨 얘기는 이미 잘 알려졌습니다.

하루 줄넘기 이단 뛰기 천 번, 양발 슈팅 천 개…

그런데 손흥민은 곱게 자란 아들처럼 늘 얼굴이 맑고 밝습니다.

그라운드에 뛰어들었다가 끌려 나가는 어린이 팬에게 유니폼을 벗어 선물합니다. 머리를 쓰다듬고 껴안아 줍니다.

라이벌 리버풀의 감독은 손흥민의 골에 번번이 발목이 잡히고도 끌어안아 격려해줍니다. 즐겁게 농담을 주고받습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패한 뒤 눈물을 흘리는 손흥민을 위로했습니다. 퇴장 당하는 그를 상대팀이 다독이는 것도 보기 드문 장면이지요.

나라와 인종, 세대를 뛰어 넘은 그의 무엇이, 적장과 적 팀의 마음까지 사로잡는 걸까요.

아버지는 그에게 "축구보다 사람이 먼저다. 겸손하라"고 가르쳤습니다. 한 해 백 권쯤 책을 읽고 서른 권을 추려 밑줄 그은 뒤 아들에게 건넸습니다.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볼보이"를 자처합니다. 아들은 아들대로 "내 축구는 온전히 아버지의 작품"이라고 말합니다.

IMF 외환위기 때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줬던 맨발의 박세리를 아직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이 땅의 젊음들이 지금 빠져 있는 좌절과 절망의 수렁은 그때보다 더 깊으면 깊었지, 결코 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그들은 보란듯이 털고 일어나 걱정하는 어른들을 오히려 위로하곤 합니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젊음이고 그래서 우리에게는 또 기대되는 미래가 있는 것이지요.

5월 23일 앵커의 시선은 '손세이셔널'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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