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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신동욱 앵커의 시선] 존엄한 삶, 존엄한 죽음

등록 2022.05.27 21:50 / 수정 2022.05.27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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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는 죽고 싶어하고, 저는 그 아이를 곁에 두고 싶습니다. 그 아이를 살려두는 것 또한 그 아이를 죽이는 것입니다"

늙은 권투 코치가 딸처럼 아끼며 키운 선수가, 온몸이 마비됩니다. 구차한 삶을 끝내달라는 그녀의 부탁을 거절했더니 자꾸 극단적 선택을 시도합니다. 번민하는 그를 신부가 꾸짖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물러나세요. 하느님께 맡기세요"

결국 약물을 주입해 생명을 끊는 엄연한 살인이 큰 논란을 불렀지만, 아카데미는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손을 들어줬지요. 

"삶에서 더이상 기쁨이 없습니다. 적절할 때 죽음을 선택할 자유를 원합니다"

백네 살 호주 학자는 특별한 병이 없었지만 안락사가 허용되는 스위스에서 베토벤 '환희의 송가'를 들으며 눈을 감았습니다. 스위스에 사는 '세기의 미남' 알랭 들롱도 안락사로 생을 마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어떤 나이, 어떤 시점부터 우리는 병원과 생명유지 장치를 거치지 않고 조용히 떠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 국민 열에 여덟이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2016년 조사보다 배 가까이 늘어났으니까 엄청난 인식 변화입니다. 품위 있는 죽음,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에 대한 갈망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겠지요.

안락사는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벨기에, 룩셈부르크, 캐나다, 콜롬비아와 미국 일부 주가 허용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매우 까다롭고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지요. 그에 비해 스위스는 대상을 외국인과 노인, 장애인, 정신질환자까지 넓혔습니다. 안락사를 주선하는 스위스 비영리단체에는 백 명 넘는 한국인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고 합니다. 그중에 두 명이 3년 전 생을 마감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안락사는 자칫 생명 경시를 부추길 수 있습니다. 남용되고 악용될 소지도 큽니다. 안락사가 이렇게나 급속하게 화두로 떠오른다는 건, 지금 우리네 삶, 특히 노년기가 매우 안락하지 못하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번 돌아보십시오. 우리 주변에 좋은 죽음, 이른바 ‘웰 다잉’을 맞을 수 있게 돕는 국가적 사회적 체제와 서비스가 얼마나 있는지… 슬픈 일이지만 우리도 안락사 논의는 피하기 어려운 과제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남은 삶에 의미를 더해주고 고통은 덜어주는 국가와 사회의 투자와 노력 말이지요. 어쩔수 없이 죽음을 선택하는 사회가 되다면 안락사는 결코 안락한 제도가 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5월 27일 앵커의 시선은 '존엄한 삶, 존엄한 죽음'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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