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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취재후 Talk] 2030 부산 세계엑스포, 역전의 역사를 쓸까

등록 2022.06.27 08:56 / 수정 2022.06.27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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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21일 오전(현지시간) 파리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장에서 2030 부산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경쟁 발표(프레젠테이션)를 하고 있다. / 총리실 제공

<88 서울 올림픽, 역전의 역사…2030 부산 세계엑스포 도전>

동서 세력이 대치하던 시점에 화합과 전진의 상징이 되었던 1988년 서울올림픽. 서울이 도전장을 낼 때 승산이 있을 거라는 전망은 희박했다. 그때까지 멕시코를 제외한 개최국은 모두 선진국이었다. 하지만 국제 역학 관계는 서울을 도왔다. 직전 올림픽이었던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이 보안비용과 2차 오일쇼크라는 세계 경기 침체 여파로 적자를 기록하면서 호주의 시드니, 그리스의 아테네 등이 유치 계획을 접었기 때문이다. 결국 대한민국 서울의 유일한 경쟁상대로 일본의 나고야만 남았다. 그럼에도 나고야는 이미 77년부터 유치전을 준비하고 있어 서울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1981년 9월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의 결과는 52대 27. 놀랍게도 57표를 가져간 쪽은 서울이었다. 당시 굉장한 성장속도를 자랑하며 아시아에선 유일하게 유럽을 능가하고 미국의 턱밑을 쫓아가는 일본에 대한 견제심이 작용했고 제3세계 국가들이 한국을 지지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행사 중 하나인 세계 박람회를 준비하고 있다. 2030년 부산을 목표로 달린다. 유치하게 되면 경제적 효과는 61조원. 방문객은 많게는 5천만 명 까지도 예상된다. 명실상부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이라 이젠 유치하기 간단해졌을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세계박람회(EXPO)가 뭐길래>

세계박람회는 쉽게 말해 세계 각국이 자국의 생산품을 전시해놓고 자랑하는 자리이다. 2030 부산세계박람회를 유치하게 되면 한국은 월드컵, 올림픽 등 세계 3대 행사를 개최한 7번째 국가가 된다. 대전과 여수엑스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 엑스포는 세계박람회보다 규모가 작은 한정된 주제의 전문 박람회 중 하나이다. 세계박람회는 5년 만에 한 번씩 개최되는데 18세기 말 프랑스에서 기술 진보를 장려하기 위해 산업전시회를 열던 것이 각국에 전파돼 51년 영국이 최초로 개최한 것이 시초이다. 올림픽이 세계박람회의 부속 행사였던 시절도 있었다.

세계박람회는 시대의 단면을 여실히 드러내 왔는데 20세기에는 제국주의 전시와 과학기술 경쟁의 장이 됐고 대공황시기에는 경제 위기의 극복 의지를 보여주는 곳이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시점엔 미소 기술경쟁이 박람회에서 펼쳐졌고 21세기에는 다양한 국가들이 글로벌 파워에 노크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급히 결정된 순방…2차 경쟁 PT에 한덕수 총리 대대적 투입>

"한덕수 국무총리가 6월 19일(일)~6월 23일(목) 간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지원을 위해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는 제 170차 국제박람회기구 총회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동행취재를 원하는 언론사는 13일까지 공보실로 통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6월 9일 총리실 공지이다. 한 총리의 파리 순방은 이날 최종 결정됐다고 한다. 보통 순방이 3주전엔 결정된다는 점을 볼 때 아주 급하게 결정된 셈이다. 기자들도 빡빡한 일정에 급히 서류를 준비하느라 바빴고 총리실은 몇 대 뜨지 않는 비행기 자리 잡기에 설명회에 방역 준비까지 하느라 애를 먹었다.

대표단은 한 총리 뿐만 아니라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박형준 부상시장, 박성근 국무총리 비서실장, 이도훈 외교부 2차관, 강재권 외교보좌관 등 정부 요직자 14명 등으로 구성됐다.

한 총리는 순방 중 인터뷰에서 "2030 엑스포를 지지하고 또 지원하기 위해 모든 역할을 다 할 거라는 확고한 국제사회에 대한 우리의 약속과 신념을 전달한다는 차원에서 2차서부터 참여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치열한 외교의 장서 울려 퍼진 '부산 갈매기'>

러시아 영공을 우회해 13시간 30을 날아 파리에 도착한 첫날. 한덕수 총리는 2027 미국 인정박람회 리셉션에 참석했다. 나머지 이틀은 프랑스 현지 조간신문 인터뷰로 시작해 30분~1시간 단위로 미국 미네소타 박람회 유치위원장, 주불대사, 남아공 대사, 세르비아 무역정보통신부 장관, CIS(구소련독립국가연합)권 대사, BIE 사무총장 등을 꽉꽉 채워 만났다.

기자들과 소통도 활발했다. 총리 스스로 첫날을 제외한 3일 동안 기자들 매일 만나 적극적으로 소통했고 외교보좌관, 비서실장, 외교부 2 차관 등이 각 행사가 끝난 뒤마다 수시로 백브리핑을 진행했다. 순방 둘째 날 동행기자단 오찬간담회에서 총리는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느라 식사를 절반 이상 남기기도 했다.

기자에게 공개된 외교행사는 첫날 미국 미네소타박람회 유치위원장을 만난 것이었는데 단어장을 가지고 다니며 공부한 것으로 알려진 총리의 영어 능력이 외교 현장에서 효과를 톡톡히 하는 것을 보았다. 우선 소통하는 시간이 2배로 늘었고 통역자의 해석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미국은 우리의 여수박람회와 같은 인정박람회를 2027년에 유치하기 위해 뛰고 있는데, 같은 숙소에서 묵었던 미 측 관계자는 우리 기자들과 마주칠 때마다 “한국이 뭐든 참 잘하잖아”라는 칭찬을 건내기도 했다.

러시아가 유치경쟁에서 빠지면서 중요해진 CIS권 대사들 5명과의 만찬은 예정보다 한참 길어졌는데 그 때문에 백 브리핑도 현지시간으로 밤 10시를 훌쩍 넘어 진행됐다. 대사들은 한국에 큰 호의를 보냈고 한 총리도 순방 마지막 인터뷰에서 이들과의 만남이 가장 유익했다며 “한국이 개발도상국에 진정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교환한 것이 도움이 많이 됐다”고 했다. 이 자리에선 ‘형제’라는 호칭이 오갔고 대사들 중 한명은 "부산 갈매기 부산갈매기, 너는 정녕 너는 잊었나"‘라며 부산 갈매기’를 불렀다고 한다.

치열한 외교의 현장이었다.

<전략은“우리를 지지하는 것을 포기하면 민망하게 만들기”>

순방을 앞둔 설명회에서 총리실 관계자는 유치 작전에 대해 "우리가 심각하게 협상을 할 만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선제적으로 우리를 지지하게 해서 나중에 버리기 좀 민망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덕수 총리는 현지시간 6월 21일 벌어진 2차 경쟁 PT에서 아주 직접적으로 이 메시지를 세계박람회기구 회원국에 던졌다. "새 정부는 2030 부산 세계 엑스포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라며 110대 국정과제에 엑스포 유치가 포함된 사실을 알린 것이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도 영상메시지를 보냈다. 한꺼번에 국가의 수장, 내각의 수장이 나서 표를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또 다른 유치 전략은 ‘스토리'이다. 순방 중 인터뷰에서 한덕수 총리는 "대한민국이 그동안 겪어온 발전의 경험 또 민주화의 경험 자체가 하나의 전략이다"라고 밝혔다.

21세기가 되면서 엑스포는 인류 공통의 과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지속가능한 발전과 재생을 중시하고 있는데, 한국이 걸어온 민주화의 길과 경제성장의 경험이 다른 개발도상국들을 도울 수 있는 바탕이 된다는 점이 설득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여성인권, 지속개발, 기후변화, 불평등, 기술측면에서도 한국이 비교우위를 가진다는 점이다.

부산은 전략적 요충지이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순방 중 인터뷰에서“부산이라는 도시는 한국전쟁 당시 30만의 인구가 100만의 피난민을 수용해 세계 2위의 환적항 첨단기술을 보유한 도시로 발전했다”고 강조했다. 부산은 사우디에게는 없는 바다, 그 해양 문화로 "내 돈주고 가면 부산을 가지 사우디는 안간다"는 생각을 갖게끔 한다.

정계가 기술혁신을 대변하는 재계와 원 팀이 돼 움직인다는 점도 강점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기업인들 사이 꺼려졌던 민간위원장 자리에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앉았고 한국의 주요기업들에겐 전담 마크 국가들이 배당된 상태로 알려졌다.

여기에 대망의 무기는 전무후무한 글로벌스타 BTS이다. 국격을 그 누구보다 한없이 높인 이들에 대한 병역문제가 여전히 찬반논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가운데 지난 14일 이들은 그룹 활동을 잠정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BTS가 2030 부산 세계박람회의 홍보대사로 다시 뭉친다. 올해나 내년 중 이들의 단체 콘서트가 부산에서 열리고 올해 11월로 예정된 3차 경쟁 프리젠테이션에서도 홍보대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BIE 현지 실사 시 BTS 멤버가 실시 대상 장소를 직접 안내하고, 파리에서 열릴 최종 투표 현장에도 BTS가 참석해 부산 개최를 지지하는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푸른 넥타이’를 맨 한 총리…그럼에도 넘어야 할 산: 사우디의 ‘오일 머니’, 2025 오사카 세계박람회>

경쟁 PT 전날 리허설 참관 후 한 총리와의 잠깐 나눈 사담에서 기자들은 총리에게 “말의 강약과 포인트를 더 주면 좋겠다”는 의견과 "밝은 옷을 입으면 좋겠다" 는 의견을 냈다. 이에 총리가 "타이는 푸른색과 붉은 색 두 가지를 준비해왔다"고 해서 기자들은 "푸른색이요!"라고 권유했다. 푸른색이 부산의 바다와, 활기를 상징하고 설득에 더 용이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또 고압적인 이미지가 연상되는 사우디와 전반적으로 차별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현지시간 6월 21일 PT에서 푸른색 넥타이를 맨 한 총리는 발표에 나선 3개국 9명의 발표자 중 유일하게 불어로 인사해 다수인 불어권 국가에 호감을 얻었다. 박형준 부산시장도 방송에 능숙한 만큼 부산의 장점과 감동을 영어로 잘 전달했다. 하지만 솔직히 사실상의 유일한 경쟁자 사우디 측 2차 PT도 나쁘지 않았다는 게 동행 기자단의 총평이다.

사우디는 여성인권과 민주주의 측면에서 많은 지적을 받는 나라다. 한덕수 총리도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사우디 특유의 오일 머니를 기반으로 한 발전 전략이 정상적인 것 같진 않다”고 했다.

그럼에도 사우디는 우리보다 훨씬 앞서 엑스포 유치전에 뛰어들어 사실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전폭적인 지원을 지시하며 유치전에 앞장서고 있다. 2030년까지 사우디를 경천동지할 만큼 변화시키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누구인가. 2018년 10월 2일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의 배후로 의심 받았던 인물이다. 개인자산 10조원 사우디 왕가 자산 1980조원 대부호 만수르의 10배가 넘는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공식 집계된 세계 1위 부호 일론 머스크의 재산이 2022년 약 266조인 것을 봤을 때 어마어마한 재산이다. 유치 현장에서 이 오일머니의 힘을 무시하긴 힘들다. 결은 다르지만 서울도 1988년 올림픽 유치 당시 스포츠용품인 아디다스의 지원을 받아 제 3세계에 이 용품을 지원하면서 표를 회수할 수 있었다.

또 변화의 현장에 세계 행사가 유치되면 경기장, 교통, 통신 인프라 건설과 방송중계 및 IT 관련사업, 스포츠 용품 사업 등을 업체들이 수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진다는 점도 사우디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2022 FIFA 월드컵 개최지 선정 때도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카타르를 이러한 이유로 지지했다.

2030 행사 직전인 2025년 세계박람회 개최지가 오사카로 결정됐다는 점도 넘어야 할 큰 산이다. 500km도 떨어지지 않은 지역에서 박람회가 연달아 두 번 개최된 역사는 없다. 정부 관계자는 순방 중 기자단의 이 같은 지적에 “이탈리아도 사우디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했지만 이탈리아 밀라노 엑스포는 2015년이었고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 엑스포는 2020년이었다는 점에서 사정이 다르다.

이 같은 기자의 우려에 순방 중 우리 당국자는 “세계 행사 유치에서 우리가 처음부터 우위를 점한 적은 없다. 역전이 우리의 무기다”라고 했다.

<역전은 되풀이될까>

세계 행사 유치 과정에서 우리에게 역전의 역사만 있었던 건 꼭 아니다.1988 서울올림픽과 달리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은 2번은 넘어져도 3번쯤이야 거뜬히 일어난 유치기를 썼다. 2000년 세계에 인지도가 거의 없는 강원도 평창이 유치 신청을 냈지만 처음엔 동계 스포츠 강자 캐나다 벤쿠버에 밀렸고 2007년 과테말라 IOC 총회에선 러시아 소치에 밀렸다. 이때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강압과 자금력이 큰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있다. 그래도 일어나 도전한 2011년에서야 남아공 더반에서 평창은 주인공이 됐다.

파리 순방을 마무리하며 한덕수 총리는 순방 결과를 상중하 중 “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역전의 기회를 보셨냐’는 질문에는 “우리를 지지하느냐는 현재로서는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며 내년 6월쯤 봐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또 “내년 11월까지의 롱 레이스에서 보면 장기적인 레이스에서 보면 지금 한 단계를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 한다.”고 했다.

결전의 날이 임박하면 우리는 지지여부에 따라 개도국들을 돕기 위한 플랜을 짤 것으로 보인다.

내년 11월 170개국이 비밀투표로 개최지를 선정하기까지 남은 기간은 약 1년 4개월. 다시 역전의 역사를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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