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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신동욱 앵커의 시선] 철없는 6월

등록 2022.06.29 21:55 / 수정 2022.06.29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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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작곡가 그로페의 '그랜드 캐니언'은 악기를 총동원해,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대협곡을 그려냅니다. 중부 대평원에서 채집한 실제 비바람, 천둥소리까지 곁들여 정신 번쩍 들도록 생생합니다.

그래서 그 음반 재킷에 이런 경고가 붙어 있습니다. '천둥소리 주의!' 한밤에 퍼붓는 폭우를 시인은 '거친 신의 숨소리'라고 했습니다.

"저 노한 목소리는 죄 지은 자의 머리 위에서 터지고, 분노의 눈빛은 세상을 쏘아보며, 어두운 소나기 한밤 내 쏟아진다"

여름날 천둥은 죽비로 내려치는 정화의 소리입니다.

"천지 밑 빠지게 우르릉대는 천둥이 없었다면, 어떻게 사람이 그 마음과 몸을 씻었겠느냐"

사실 유월은 어정쩡한 달입니다.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오월과 칠월 사이에 숨어 지내는데 사람들은 잘 모르고 그냥 지나가곤" 하지요.

그런데 올 유월은 철이 없어도 여간 없는 게 아닙니다. 칠월도 안 됐는데 벌써부터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무더위 사중주를 요란하게 연주해댑니다.

유월은 일찌감치 30도 넘는 더위를 퍼부어 올해 첫 내륙 폭염경보를 예년보다 스무날 넘게 앞당겼습니다. 뒤이어 이른 장마가 밀려왔고 물 폭탄에 강풍까지 몰아치고 있습니다. 설상가상, 기상 관측 백15년 만에 처음으로 유월 열대야가 서울을 비롯한 여기저기에 들이닥쳤습니다.

밤이면 기온이 떨어져 선선해지는 여느 유월과 달리, 후텁지근 잠 못 이루는 밤에 다들 뒤척입니다. 가뜩이나 더위가 모질고 길 거라는 올여름을 어떻게 뚫고 갈지 생각만 해도 난감합니다.

옛말에 "나라가 태평하면 비가 조용히 내려 흙덩이가 깨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바람이 불어도 닷새에 한 번 불고, 비가 와도 열흘에 한 번 온다"고 했지요. 장마와 폭염도 무심하지만,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이리저리 뒤엉켜 삿대질하는 정치판도 끈적끈적하게 울화를 부채질합니다.

물가고의 해일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입니다. 누가 이 혼돈의 먹구름을 걷어내고 철딱서니 없는 폭우를 멈출 수 있을까요.

저 하늘과 우리 마음에서 암울한 장맛비 걷혀, 시인이 노래했던 '어느 갠 날' 상쾌한 아침을 기다립니다.

"맑은 하늘이 못 속에 내려와서 여름 아침을 이루었으니, 녹음(綠陰)이 종이가 되어 금붕어가 시를 쓴다"

6월 29일 앵커의 시선은 '철없는 6월'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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