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진들이 굉장히 많아요. 무광택으로 인쇄를 부탁해요."
용기내 썼지만 결국은 부쳐지지 못한 편지가 됐다.
세계적인 여성 사진작가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 1926~2009)는 생전에 한 번도 작품을 공개한 적이 없다. 직업이 사진가도 아니었다. 사후 우연한 기회에 유명해지기 전까지 그녀는 아무개의 보모였을 뿐이다.
지금은 천재 포토그래퍼가 된 마이어의 전시가 한국에서 열린다.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토리노에 이어 서울 성수동 '그라운드시소'에서 개최되는 이번 전시에는 작품 270여 점과 생전 그가 사용했던 롤라이플렉스, 라이카 카메라 등이 함께 전시된다.
1926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마이어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머니의 모국인 프랑스에서 유년 시기를 보낸 마이어는 20살이 넘어 카메라를 접하면서 자신만의 비밀 세계를 만들었다. 물론 전문적인 사진 교육을 받지 않았다.
마이어는 평생 보모로 살았다. 결혼도 하지 않고 자녀도 없었다. 타인에게 자신의 본명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을 정도로 비밀스러운 삶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런 그가 보모 직업을 택한 것은 개인적 자유가 확보되고 숙식이 제공되기 때문이다.
마이어의 삶은 사후 다큐로 만들어졌는데, 주변인들은 큰 키에 마른 체형을 지닌 마이어가 자기 주장이 강하고 괴짜스러운 성격을 지녔으며 병적으로 물건을 모았다고 증언했다. 동시에 놀라울 정도로 지적이고 가식이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는데 정치와 사회에 관심이 많아 신문수집광의 모습도 보였다고 전했다.
마이어는 보모로 일하면서 틈틈이 카메라를 들고 시내 곳곳을 돌며 인물들의 사진을 찍었다. 아름다운 사진이 아닌 빈곤, 우울, 사랑 등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담았다.
30대에는 홀로 세계여행을 떠났고, 어머니의 모국이었던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서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한 번도 자신의 사진을 공개한 적이 없었던 마이어는 이때 마을 사진관 주인에게 사진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고 편지를 썼지만 결국 부쳐지지 못했다.
평생 궁핍하게 살았던 마이어는 말년에는 노숙자와 다름 없는 생활을 했고 밀린 임대료 등 경제적 어려움에 2007년 자신이 아끼던 필름과 사진, 카메라 등을 경매에 내놓게 된다.
그때 등장한 존 말루프. 역사학도이자 사진가였던 말루프는 당시 시카고 벼룩시장에 나온 마이어의 필름들을 헐값에 사들인다. 한동안 관심을 갖지 않다 2년 후 현상소에 필름 몇 개를 맡겼고 현상된 사진들에 놀라게 된다
마이어 사진의 진가를 발견한 말루프는 자신의 SNS에 사진 몇 장을 올리며 대중들의 의견을 물었고 그것이 마이어를 천재 포토그래피로 만들어준 시초가 됐다.
하지만 마이어는 생전 빛을 보지 못했다. 2008년 시카고 거리를 걷다 넘어져 뇌진탕을 입었고 제대로 치료도 못해본 채 2009년 임대아파트에서 쓸쓸히 인생을 마감했다.
그가 죽은 지 얼마 안돼서 그의 사진들은 미국, 영국, 벨기에 등에서 전시되기 시작했고 급속도로 유명세를 타게 됐다.
이후 그의 인생과 사진 세계를 다룬 다큐 '마이어를 찾아서'가 제작돼 전 세계에 상영됐고, 이 작품은 2015년 아카데미상 최우수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작에 선정되기도 했다.
마이어는 육체노동자나 노숙자 등 소외된 소수자들의 사진을 많이 찍었다. 좀처럼 남들에게 드러내지 않던 자신의 모습도 '셀카'로 꽤나 많이 찍었는데, 거리의 쇼윈도, 상점 등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담았다.
이번 서울 전시에서는 비비안 마이어가 1959년 필리핀, 홍콩,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 등 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며 찍은 사진들이 최초 공개된다.
사진전은 오는 11월까지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