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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신동욱 앵커의 시선] 바다가 쏟아졌다

등록 2022.08.09 21:49 / 수정 2022.08.09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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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님이시여! 바라건대 보우하시어 응당히 때에 맞추어 비를 그치고, 조화로운 바람을 불게 하시어…"

11년 전 이맘때, 비가 그치기를 하늘에 비는 기청제가 백여 년 만에 열렸습니다. 사흘 내리 서울에 쏟아진 폭우로 우면산 산사태가 나고, 강남이 물에 잠긴 뒤였습니다. 예로부터 입추가 닷새 지나도록 비가 오면 곡식과 과일이 여물지 않아, 조정과 고을마다 정성껏 기청제를 모시곤 했지요.

속담에 "가뭄 끝은 있어도 물 난 끝은 없다"고 했습니다. "삼년 가뭄에는 먹을거리가 있어도 삼일 홍수에는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가뭄은 농사를 망치지만, 홍수는 모든 것을 쓸어 가버려 더 무섭다는 얘기입니다.

밤새 퍼붓는 폭우를, 시인은 "하늘이 짖는다"고 했습니다. "어두운 소나기가 한밤 내 쏟아진다. 신의 숨소리는 거칠기만 하다"고 했지요. "물소들이 지붕 위를 지나간다"는 시구도 있습니다. 입추 지나자마자 하늘이 터뜨린 간밤의 물 폭탄이 그랬습니다. 뚫린 하늘에서 바다가 쏟아졌습니다. 거기에 서울이 잠겼습니다. 방금 전까지 1년 내릴 비 30%를 쏟아부은, 백15년 만의 폭우 앞에 서울은 속수무책 무기력했습니다.

11년 만에 강남은 다시 물바다가 됐고, 퇴근길은 물에 잠긴 차들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하천 범람과 산사태 경보가 잇달면서 주변 주민들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야 했습니다. 반지하 집이 침수돼 갇힌 발달장애인 가족이, 이웃들의 구조 노력도 헛되이 숨지는, 가슴 아픈 일도 벌어졌습니다. 퇴근 전쟁은 오늘 아침 출근 전쟁으로 이어졌고, 얼마나 더 비가 올지 다들 신경을 곤두세우는 형편입니다. 삼가 기청제라도 지내야 하는 걸까요.

이번 비는 장마와 거의 같은 기상조건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7월 장마보다 훨씬 더 강력한 비를 쏟아붓고 있습니다. 폭우가 중부에 집중되고 남부는 폭염에 갇혀 있는 것도 이례적입니다. 상식을 깨뜨리는 이상기후는, 갈수록 예측하기 어려운 양상을 띠게 될 거라고 합니다.

시인 김수영은, 여름 뜰에 내리꽂는 빗소리가, 이렇게 호통치는 소리로 들린다고 했습니다. "조심하여라! 자중하여라! 무서워할 줄 알아라!" 모두를 두려움에 빠뜨린 초유의 물 폭탄은, 어쩌면 몸가짐을 가다듬고 겸손하라는 가르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8월 9일 앵커의 시선은 '바다가 쏟아졌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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