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이메일보내기
  • URL복사
정치

[신동욱 앵커의 시선] 술잔이 넘칩니다

등록 2022.08.10 21:53 / 수정 2022.08.10 21:57

  • 페이스북
  • 트위터
  • 이메일보내기
  • URL복사


계영배라는 이름이 붙은 조선 백자 술잔입니다. 7할쯤 술을 따르면, 담겨 있던 술까지 모두 밑으로 새버립니다. 안에 원통형 관이 있어서, 차오른 술이 대기압에 의해 관을 타고 빠져나가는 '사이펀의 원리'가 숨어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왜 이런 술잔을 만들었을까요? '가득참을 경계하라'는 이름처럼 '지나친 욕심을 부리면 도리어 모든 것을 잃는다'는 교훈을 담고 있지요.

최인호 장편소설 '상도'에서, 신뢰를 팔았던 큰 장사꾼 임상옥이 늘 곁에 두고 과욕을 다스리는 잔입니다. 제주도 거상 김만덕도 "정직한 믿음을 판다"는 상도의를 목숨처럼 지켰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쳐 혼자 잘 살면 뭐 하겠습니까"

재작년 민주당이 당헌을 바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려하자 당시 이재명 지사가 반대했던 말은, 제가 들은, 가장 멋진 이재명의 언어였습니다. 

"장사꾼도 신뢰가 중요하잖아요. 정치는 어떻습니까. 안 믿잖아요. 또 거짓말 하는구나" 

그는 "공당이 문서로 약속을 했으면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했지만, 비공개 경고를 받고 물러섰습니다.

그리고 2년이 흘렀습니다. 이번에는 이재명 의원을 지키기 위해 민주당의 당헌을 바꾸려 한다는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부정부패로 기소되면 당직자 직무를 정지시키는 조항을 없애겠다는 겁니다. 이른바 사법 리스크에 휩싸인 이재명 후보가 대표가 될 경우를 염두에 둔 움직임이란 건 삼척동자도 아는 일입니다.

정작 놀라운 사실은 이재명 의원 본인의 인식입니다. 이 의원은 이 조항이 "야당 탄압의 통로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조항은 도대체 왜 생겼을까요? 다름아닌 문재인 전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 반부패 혁신안으로 만든 겁니다. 그렇다면 문 전 대통령이 스스로 탄압의 통로를 열었다는 얘기인지 어리둥절할 따름입니다.

보통사람이라면 면구스러워서라도 자신에게 이로운 일에 선뜻 나서기 어려운 법입니다. 그런데 이 의원은 아예 당헌 개정이 자기와는 상관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개정 청원에 앞장섰던 게, 이 의원의 열성 지지자들이 아니고 누구라는 얘기인지 다시 한번 어리둥절합니다.

민주당은 정권 교체 일주일을 앞두고 갖은 편법과 꼼수를 동원해 검수완박을 밀어붙였습니다. 이 의원은 대선에서 패한 지 석 달도 안 돼, 연고도 없는 민주당 텃밭에서 금배지를 달았습니다. 그러고 한 달 반 만에 당 대표 출마를 선언했고, 이제 기소돼도 당직을 유지할 수 있는 당헌 개정까지 원하고 있습니다. 방탄도 이쯤이면 겹겹이 철갑을 두른 듯합니다.

욕심껏 잔을 채우려다 이미 채운 술까지 다 새버리는 계영배를 생각하며 이 의원이 했던 말을 다시 들어봅니다. 

"정치인은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장사꾼도 신뢰를 유지하려고 손실을 감수합니다" 

백번 맞는 말씀입니다. 상인에게 상도의가 있듯, 정치인에게는 최소한의 정치 도의가 있는 법이지요.

8월 10일 앵커의 시선은 '술잔이 넘칩니다' 였습니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