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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신동욱 앵커의 시선] 빗속의 의인

등록 2022.08.12 21:50 / 수정 2022.08.12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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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천금으로 밭을 사고, 만금으로 이웃을 산다"고 했습니다.

이웃이 사촌보다 가깝다고 해서 '삼촌 반' 이라고도 했지요. 이웃을 믿고 아끼는 마음은 이렇게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습니다.

가난한 당나라 시인이 인정 많은 이웃들을 찬미했습니다.

"10년 친구도 아니고 9족 친척도 아니지만, 봄 동산에 따스한 햇볕 같구나"

이웃 할머니네 매실나무 가지가 시인의 텃밭으로 넘어와 오가는 통로를 막았습니다. 그래도 시인은 할머니가 탐스런 매실을 다 따 간 뒤에야 바지랑대를 세워 길을 열었습니다.

"우리 집 호박 줄기는 지난해에도 지지난해에도 할머니네 밭으로만 기어들어가 잘 살았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네 이웃 촌수는 갈수록 멀어져만 갑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른다는 이가 열에 넷입니다. 더욱이 천만 거대도시 서울이라면, 으레 자기만 알고 사는 각박한 세상이려니 하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재난이 덮치자 다들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이웃은 역시 사촌이라는 사실을…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의인들도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습니다.

한밤중 청주 어느 아파트 주민들이 저마다 바가지를 들고 물을 퍼냅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백여 명이 뛰쳐나와 허벅지까지 물이 차오르도록 안간힘을 써봅니다.

서울 개봉동 산자락 아파트에선 흙더미가 쏟아지자 예순 중반 주민 한 분이 집집마다 뛰어다니며 문을 두들겼습니다. 불려 나온 주민들도 7층까지 오르내리며 이웃들을 대피시켰고, 토사가 그치자 또 모두가 심야 복구에 힘을 모았습니다.

의왕 산기슭 아파트에서도 주민들이 새벽에 쓰레받기까지 들고나와 흙더미를 치웠습니다.

아수라장이 된 강남 한복판에서 중년 남성이 맨손으로 빗물받이 덮개를 열어 쓰레기를 치웁니다. 이 '강남역 수퍼맨' 덕분에 종아리까지 찼던 물이 금세 빠집니다.

다음 날엔 '의정부 수퍼맨'이 맨손으로 배수로를 뚫어 물을 빼냅니다. 종량 봉투를 갖고 나와 곁을 지킨 여성이 금상첨화 같습니다. 시민들은 물이 들어차는 반지하 집 여기저기서 주민들을 구해내고, 차에 갇힌 여성을, 헤엄쳐 구출했습니다.

'빗속의 의인'들이 우리 사는 세상에 믿음과 희망을 불어넣는 사이, 어리석은 '빗속의 우인'이 어김없이 끼어들었습니다. "사진 잘 나오게 비 좀 왔으면 좋겠다"는 얼빠진 여당 의원 말입니다. 정치도 국정도 그저, 착하고 용감한 우리네 이웃, 보통 시민들만큼만 하면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8월 12일 앵커의 시선은 '빗속의 의인'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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