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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신동욱 앵커의 시선] 반지하의 삶

등록 2022.08.16 21:52 / 수정 2022.08.16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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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야, 여기 내 집"

반지하 방으로 이사한 서연을 위해, 승민은 커튼부터 달아줍니다. 바깥 세상으로 난 창은, 바깥 사람들이 들여다보는 창이기도 했던 겁니다. 풋풋한 첫사랑은 반지하에서 싹텄다가 시들어버립니다.

반지하 이웃, 3류 건달과 취업 준비생이 티격태격하며 마음을 열어갑니다. 그 반지하는, 좌절한 젊음들이 보다 나은 삶으로 올라서는 극복과 재생의 발판입니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서울 반지하의 부조리한 삶을 절묘하게 그려내 'banjiha(반지하)' 라는 고유명사를 세계로 알렸습니다.

하지만 어떤 드라마도 현실보다 비극적일 수는 없습니다. 1990년 망원동 반지하 단칸방에 불이 나 다섯 살, 세 살 남매가 숨졌습니다. 경비원 아버지와 가사도우미 엄마는 돈을 벌기 위해 아침 일찍 나가야만 했습니다. '아이들이 부엌칼과 연탄불에 다칠까 봐' 점심상과 요강을 들여놓고 문밖에 자물쇠를 채웠지요. 화마가 어린 두 생명을 앗아간 그 비극의 방에서는 타다 만 성냥이 발견됐습니다.

그리고 32년이 흘러 이번에는 수마가 세 가족의 보금자리 신림동 반지하 집을 덮쳤습니다. 참변을 당하기 직전 초등학교 6학년 손녀는 병원에 계신 할머니께 문자를 보냈습니다. "기도도 많이 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편안하게 계셔요" 반지하의 비극에 관한 한 서울은 나아진 게 없습니다.

서울시가 반지하 20만 가구를 순차적으로 없애 공공임대로 옮기는 대책을 내놓은 데 이어, 국토부가 임대주택 우선 공급과 주택 개보수 지원 방침을 밝혔습니다.

끔찍한 재난과 사건 사고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사회가 한 걸음 더 진보하는 계기가 되곤 합니다. 반지하의 참극을 되풀이할 수 없다는 정책의 각성 역시 당연합니다.

하지만 거기 살고 싶어서 사는 이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당장 먹고살기 위해서든,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든 반지하를 선택하는 사정과 이유가 저마다 있기 마련입니다.

이미 1990년대부터 번번이 반지하 퇴출과 신축 제한을 추진했지만 오히려 더 늘어난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겁니다.

반지하에 산다는 건 어엿한 지상의 집을 향해 가는 꿈속의 삶일 지도 모릅니다. 다만 빨리 깨어나고 싶은 꿈이겠지요.

시인이 10년 반지하 살이를 '가난의 힘'으로 벗어 던졌듯 말입니다.

"가난의 힘은 그래도 살아가는 것이다"

주거복지 정책은 꿈을 심고 키워주는 데서 출발합니다. 반지하의 비극을 없애겠다는 말이 '그럼 어디로 가라는 거냐'는 물음으로 돌아오게 해서는 결코 안 될 겁니다. 그러려면 반지하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던 삶을 좀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부터 시작해야겠지요.

8월 16일 앵커의 시선은 '반지하의 삶'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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