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이메일보내기
  • URL복사
사회

[신동욱 앵커의 시선] 내 죽거든

등록 2022.09.22 21:51 / 수정 2022.09.23 14:45

  • 페이스북
  • 트위터
  • 이메일보내기
  • URL복사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 다오"

황동규 시인의 '풍장' 연작은 14년에 걸쳐 일흔 편까지 이어졌습니다. 시신을 자연과 바람에 내맡기는 죽음에, 삶의 명상을 담아냈지요.

"나 이제 지쳐서 어둠 속에 쓰러지네. 죽음의 그림자에…"

세기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파리 공동묘지 무덤은 비어 있습니다. 그는 유언에 따라 화장돼 고국 그리스, 폭풍우 치는 에게해에 뿌려졌습니다. 이제 산골(散骨) 해양장은 인천 앞바다에서만 한 해 5천 건 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내 무덤 위에 버드나무를 심어 다오. 내 잠든 땅 위에 그 그늘, 사뿐히 드리워 다오"

시인 알프레드 드 뮈세의 묘비명처럼, 나무 아래 뼛가루를 묻는 수목장은 우리에게도 익숙해진 지 오래입니다. 명문가 경주 최씨 진사공파가 20년 전 잔디밭에 마련한 문중 장지는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잔디를 들어낸 뒤 흙과 유골을 1대1로 섞어 묻고 다시 잔디를 덮습니다. 장지 홈페이지에 올린 성경 말씀이 눈길을 붙듭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그런데 이제는 이런 시구가 등장할지 모르겠습니다.

"나 죽거든 거름으로 뿌려 다오"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시신을 퇴비로 만드는 '인간 퇴비화'를 5년 뒤 허용하기로 했습니다. 풀, 나무, 미생물을 활용해 미생물과 박테리아가 시신을 자연 분해해 퇴비용 흙으로 만드는 방식입니다. 매장도 화장도 아닌, 제3의 장례가 등장한 것이지요. 관도 묘지도 필요 없고, 화장처럼 화석연료도 쓰지 않아 보다 친환경적이라고 합니다.

유족은 퇴비로 돌아온 유해를 집 마당과 농토에 뿌리거나 환경보호단체에 기부하게 됩니다. 퇴비장은 3년 전 워싱턴주에서 시작해 오리건 콜로라도 버몬트주가 도입했고, 뉴욕주도 주지사 서명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인간이 온전히 흙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라고 내세우지만 종교계를 중심으로 반발과 거부감이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가톨릭만 해도 화장을 허용하되, 묘지 또는 교회가 지정한 장소 외에 보관하거나 뿌리는 걸 금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믿음과 육신의 존엄을 해친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우리 장례 문화와 의식이 많이 진보했다곤 해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분이 적지 않을 듯합니다. 하지만 죽음이 언젠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이라면 그 이후의 모습 역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닐 겁니다. 거기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 것인지 또한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몫일 거고요.

9월 22일 앵커의 시선은 '내 죽거든' 이었습니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