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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취재후 Talk] 대통령실에 왜 대변인이 없나

등록 2022.10.05 07:00 / 수정 2022.10.0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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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김은혜 홍보수석(왼쪽)과 이재명 부대변인.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에겐 지금 대변인이 없다. 지난달 7일 강인선 대변인이 해외홍보비서관으로 옮겨간 뒤 '홍보수석-부대변인 체제'로 4주째 운영중이다.

대변인 임무는 김은혜 홍보수석과 이재명 부대변인이 나눠서 수행한다. 지난 8월 김 수석이 대통령실에 합류한 뒤 사실상 대변인 역할까지 겸하다가, 지난 순방을 전후부터 이 부대변인의 활동 영역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1971년생 김 수석은 MBC 기자·앵커 출신으로 MB정부 청와대 대변인을 비롯해 21대 국회의원과 경기지사 후보 등 이미 널리 알려진 이력을 갖고 있다.

이 부대변인은 1975년생으로 동아일보에서 오랫동안 기자 생활을 했고, 채널A에서 앵커와 패널 활동을 하다 지난 5월 정부 출범에 맞춰 대통령실에 합류했다.

또 한 명의 부대변인으로 채널A·KBS 기자 출신인 천효정 행정관(1986년생)이 있는데, 현재까지 브리핑장에 서거나 직접 언론 대응에 나서는 등 대외적인 업무는 하지 않고 있어 역할이 불분명한 상태다.

차관급인 수석은 MBC, 2급 부대변인은 채널A, 3급 부대변인은 KBS 출신으로 모두 방송언론 배경을 갖고 있다.

이 지점에서 공통적인 질문이 나온다. 1급 비서관에 해당하는 대변인은 왜 공석인가. 이 부대변인이 그냥 승진해 대변인을 맡으면 안 되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통령실의 대부분 관계자들은 명쾌한 답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함께 궁금해한다. '왜 안 되지?' '이 부대변인 역량이 아직 안 되나?'

그나마 내부의 속깊은 사정을 알만한 이들로부터 다소 허무해보이는 답을 들었다. "이재명이란 이름 때문이다."

지난 8월 10일 대통령실 브리핑룸에 입장하는 강인선 대변인. 현재 해외홍보비서관을 맡고 있다. / 연합뉴스


■ 대변인의 남다른 이름

대변인은 단순한 '직책'이 아니다. 대통령실 대변인은 사실상 대통령을 '대리'하는 인물이다. 대통령의 말은 물론 그의 철학과 생각, 행동이 대변인을 통해 투영된다. 그래서 흔히 '대통령의 입'이라고 서술하지 않던가. 미국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백악관 대변인을 '나라의 얼굴'이라 일컬었다 한다.

당시 미 대통령으로부터 '나라의 얼굴'이라 칭함을 받은 애리 플라이셔 언론비서관은 "진실이라고 알고 모든 것을 다 말하기보다는, 말 한 모든 것이 진실이어야 하는 자리"라고 자신의 직책을 회고했다. 백악관이든 청와대든, 그리고 용산 대통령실이든 '대통령의 대리인'은 자신의 말 한 마디가 얼마나 위대하고 위험한지 깨달으며 매일 언론과 전쟁을 치러왔다.

대통령실의 고위급 조직은 실장-수석-비서관 순으로 구성된다. 장차관급인 실장·수석과 달리 비서관들은 별도 차량이 제공되지 않는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대변인은 예외였다. 동급 비서관들과 차별되는 상징과 의미,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대변인은 '대통령의 대변인'이다. 박수현·김의겸·고민정은 '문재인의 대변인'이었고, 윤창중·김행·민경욱은 '박근혜의 대변인'이었다. 이동관·김은혜는 '이명박의 대변인', 윤태영·천호선은 '노무현의 대변인'이었던 셈이다.

'윤석열의 대변인'은 강인선이었지만, 지난달 물러나 현재는 해외홍보비서관 겸 외신대변인을 맡고 있다. 후임자 대신 홍보수석과 부대변인이 역할을 나눈 상태인데, 만약 이 부대변인이 '부'(副)를 뗄 경우 '윤석열의 대변인은 이재명'이란 구도가 성립된다고 한다. 얼핏 들으면 별 설득력이 없어 보이면서도, 하필 대선 상대와 이름이 같으니 어쩔 수 없어 보이기도 한, '기막힌' 사정이다.

부대변인의 '남다른 실명'에 대해선 대통령실을 출입하는 기자들도 경험담이 많다. 임기초 '관계자'란 익명으로 주로 대응하던 그가 '온브리핑'을 몇 차례 시작하자 기사를 쓴 기자들에게 항의가 빗발쳤다. 주로 '오타를 낼 걸 내야지, 어디 감히 이재명을 거기다 끌어쓰냐'는 취지의 비판들이었다.

심지어 이 부대변인 본인도 그러한 사정을 안 듯 자신의 이름을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이 아닌 '대통령실 이재명 부대변인'으로 적어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일부 참모들과 기자들 사이에선 '개명이라도 해야 하냐'는 농담섞인 넋두리도 나온다.

최근 이 부대변인이 활동 폭을 넓혀가면서, 이름을 둘러싼 구설도 점차 누그러지는 모습이다. '오타'라며 강도높은 지적을 하던 이들도 이젠 대통령실에 이재명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는 분위기다. 동명이인이 허다한 대한민국에서 이름이 같은 게 무슨 상관이냐는 반박도 적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 도어스테핑(약식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대변인 없는 기형적 구조

'윤석열 정부'에선 대통령실 대변인이란 직책 자체가 큰 의미 없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대통령이 일주일 두세 차례 '출근길 도어스테핑'이란 약식회견을 통해 국정을 직접 설명하고 질의응답을 받는 만큼, 대변인의 역할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는 과거 청와대를 비롯한 대통령실의 소통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시각이다.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은 과거 대통령들이 끊임없이 지적을 받아온 '불통' 문제를 용산 대통령실 이전을 계기로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대통령이 직접 전면에 나서 '대국민 직접 소통'을 확대한 것이지만, 참모와 대통령실 차원의 소통은 또 다른 영역이다. 도어스테핑 초반 대통령실이 여러 기자들에게 '예리한 비판과 지적도 좋으니 대통령이 답할 만한 질문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던 배경도 마찬가지다.

과거 청와대 시절 대변인의 아침 브리핑엔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현안이 도마 위에 올랐다. 여의도 정치권 쟁점은 물론, 외교안보와 경제, 문화, 국제, 사건·사고까지 모든 사안을 대변인은 다룰 수 있어야 했다. 이러한 역할과 책임은 용산으로 옮겨온 대통령실에서도 마땅히 이어져야 한다.

대변인이 없는 대통령실은 기형적 구조다. 홍보수석은 직제상 대변인실을 포함한 홍보기획·해외홍보·대외협력·뉴미디어 등 5개 비서관실을 둔 참모의 성격이 강한 만큼, 당사자의 역량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대변인 역할까지 온전히 수행하긴 어렵다.

부대변인의 '사실상 대변인 역할'도 한계가 있다. 사람은 권한과 책임이 확실히 주어져야 일도 확실히 하기 마련이다. 별다른 결격 사유가 없다면 이 부대변인을 대변인으로 임명을 하고, 그게 아니라면 새로운 인물을 발굴해 정식 대변인으로 발탁해야 한다.

윤 대통령 순방 중 일어난 '뉴욕 발언 사건'은 홍보라인의 이러한 비정상적 구도가 화를 키운 측면이 있다. 여기저기 참석할 자리와 다룰 현안이 많은 홍보수석이나 역할과 책임이 부정확한 부대변인이 아니라, '윤석열의 대변인'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 나타나 자신의 직을 걸고 '대통령의 말은 이러한 것'이라고 일찌감치 선을 그었다면, 현재와 같은 전선은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실 김대기 비서실장과 김은혜 홍보수석이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자료를 보며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 부대변인의 존재 이유


'대변인의 부재'만큼 기자들의 이해를 얻지 못한 인선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천효정 행정관의 깜짝 발탁이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지난달 7일 인선 발표 당시 "부대변인 체제에서 이 부대변인 혼자선 업무 과중 문제가 있어서 신규로 부대변인을 임명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 천 부대변인은 현재까지 브리핑을 하거나 직접적인 공식 언론 대응 역할은 하지 않고 있다. 여러 관계자들에 따르면, 전면에 나서기보단 주로 사실관계 확인과 보도자료나 발표 문안 등을 작성하는 과정에 투입 중이라고 한다.

이 지점에서 또 질문이 나온다. '원래 대변인실 행정관들이 하는 역할 아닌가' '그럴 거면 굳이 부대변인을 맡길 이유가 있나' '실제 부대변인이 맞긴 한가' 이 물음에도 많은 관계자들이 시원한 답을 못하고 있다.

혹자는 적응과 훈련 과정을 거친 뒤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전면에도 나설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대통령실은 그런 트레이닝을 하는 곳이 아니라 최고의 프로페셔널 집단이 모여도 시원찮은 조직이란 반박도 만만찮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초 여론 동력을 확보한 '허니문 효과'를 이어갔다면 대통령실 인선도 나름 여유롭게 이뤄질 수 있다. 하지만 취임부터 현재까지 위기의 순간이 끊임 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책임론이 집중된 홍보수석실은 구성원 모두가 전투태세에 준하는 각오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변인 없는 대통령실의 부대변인이라면 언론·여론과의 혹독한 승부 속에서 본인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입증해야 할 책임이 있다. 역할과 직무가 불분명한 홍보수석-부대변인 체제가 장기화할 경우 부담은 결국 대통령의 몫이 된다. 대통령을 '대변'하고 '대리'하며 '대응'해야 할 대변인이 없는 기형적 상황은 조속히 정상화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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