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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신동욱 앵커의 시선] 번지수가 틀렸습니다

등록 2022.10.05 21:54 / 수정 2022.10.05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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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돼 가도록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대기하던 대기업 사장이 참다 못해 손을 들더니 볼멘소리를 꺼냈습니다.

"질문이 끝난 사람들은 아까 집에 가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계속 붙잡아놓는 바람에 국감이 끝난 새벽 한 시 20분에야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어느 국감장 한구석에 운수업체 대표가 하루 종일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한 의원이 물었습니다.

"아무 위원도 질의를 안 하셨어요? 서운하실까 봐 제가 몇 말씀 질의하려다가…"

그러면서 그를 부른 의원이 "왜 질문을 안 했는지 꼭 물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수입차 업계 담합을 따지려는 국감장에 어느 기업 대표가 출석했습니다. 싱가포르 출신인 그는 세 시간을 기다리다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한성자동차 하고) 같은 회사 아니에요?" "우리는 부동산 임대회사이고 자동차 판매업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그룹 총수를 불러 번갈아 같은 질문을 해대기도 합니다.

"변종 SSM (기업형 슈퍼마켓)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지요?" "소위 변종 SSM 문제에 대해서…" "변종 SSM사업을 앞으로도…"

국회가 국정감사에 기업인을 증인으로 불러 호통치고 망신 주는 행태가, 나아지기는커녕 이렇게 갈수록 도를 더해갑니다.

올해 국감에서도 증인으로 채택됐거나 논의 중인 기업인이 백쉰 명을 넘습니다. 산자위에서만 대기업 사장급 임원 열입곱 명을 확정했고, 국토위에서는 야당이 10대 건설사 사장 모두를 증인으로 신청했습니다. 혼자서 스물여섯 명을 부르겠다고 나선 여당 의원도 있습니다. 그래놓고는 정작 "간단히 짧게, 네 아니오로 대답하라"고 다그치는 일이 되풀이되곤 합니다. 1~2분 대답을 듣자고 온종일 대기시키고, 다짜고짜 꾸짖고, 엉뚱한 질문을 하고, 지역구 민원을 들이대고, 출연금을 요구하기 일쑤입니다.

기업인들이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지요. 그러다 보니 국회 보좌관들 사이에 나도는 말이 '여의도 암시장' 입니다. 기업인들을 무더기로 증인 신청해놓고 빼주는 조건으로 민원을 해결하는 것을 비꼬는 말입니다.

국정을 감사하는 국감장에서 민간 기업에게 무엇을 얼마나 추궁할 일이 많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국감에서 기업과 관련한 의혹을 명쾌하게 밝혀냈다는 얘기를 저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기업이 온 힘을 쏟아도 헤쳐나가기 힘든 생존 위기에서 도대체 이 무슨 시간과 힘의 낭비입니까. 외식기업가 백종원씨가 국감에 나와 맞받아쳤던 한마디가 생각납니다.

"아니 이거 좀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10월 5일 앵커의 시선은 '번지수가 틀렸습니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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