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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신동욱 앵커의 시선] 불만의 겨울

등록 2022.11.30 21:50 / 수정 2022.11.30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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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의 아들 빌리가 발레리노를 꿈꾸며 춤추는 곳은 쇠락한 탄광마을입니다. 영국에서 가장 길고 혹독했던 탄광노조 파업이 절정으로 치닫던 때였지요. 빌리의 아버지가 파업에 불참한 동료들에게 소리칩니다.

"반역자! 반역자!"

하지만 파업으로 수입이 끊긴 아버지는 아들의 꿈을 이뤄주려고 스스로 '반역자'가 돼 일터로 나갑니다.

"생산성 없는 탄광은 폐쇄해야 합니다" 

'철의 여인' 대처 총리가 석탄산업 합리화를 선언하자 탄광노조 위원장이 불법파업에 나섰습니다. 그는 '아서왕'으로 불릴 만큼 노동계의 절대적인 권력자였습니다. 폭력적 전위조직을 앞세워 불참자와 가족을 협박하고, 출근하는 광부들 택시에 콘크리트 더미를 던져 사람이 죽기까지 했지요. 하지만 대처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지도부 체포, 노조 재산 압류, 무노동 무임금을 밀어붙였습니다. 견디다 못한 노조원들이 이탈하면서 3백63일을 끌었던 파업이 끝났습니다.

노조로 대표되는 '영국병'을 고치는 출발점은, '불만의 겨울'로 불리는 그로부터 6년 전 총파업이었습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 노동당 내각의 임금 인상 제한에 맞선 트럭 파업으로 운송이 마비됩니다. 철도, 의료, 시신 매장까지 번진 공공 파업으로 거리는 쓰레기에 덮이고 장례식도 치르지 못합니다. 그 겨울에 진절머리를 낸 영국 국민이 보수당에게 총선 승리를 안기면서 대처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민노총 화물연대가 올해 두 번째 총파업에 돌입했습니다. 이번에는 정부의 업무개시 명령까지 거부하며 일주일째 파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지하철 서울교통공사 노조가 6년 만의 파업에 나섰습니다. 당장 운송과 물류가 막히면서, 건설현장, 자동차 배송은 물론 동네 주유소에 이르기까지 산업 전반에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습니다.

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떨어진 오늘 아침 당장의 출퇴근 대란을 면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시민의 발이 묶이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거기에다 민노총 철도노조도 모레부터 파업에 가세한다고 합니다. 

정부는 화물연대가 다시 거리로 나선 것에는 새 정부 길들이기 측면이 다분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할 수 있는 법이 지난 2004년 만들어졌지만 그동안 한 번도 시행되지 않은 것도 노조의 오판을 부추겼습니다. 국가 경제가 심각한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데 언제까지 노조만 성역일 순 없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중에 노사 법치주의를 확고히 세울 것이며 어떤 일이 있어도 불법과는 타협하지 않겠다고 단언했습니다. 그런데 민노총은 이번 주말 서울과 부산에서 노동자대회를 열고 6일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했습니다. 주말마다 이미 서울 도심에서는 '정권 퇴진' 집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런 강대강의 대치가 오래 간다면 우리 경제가 이번 겨울을 무사히 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정부는 원칙을 지키되 대화와 타협의 문 역시 활짝 열어 놓아야 할 것입니다. 불법과 폭력 파업의 순환 고리를 끊어내려면 국민과 기업의 인내 역시 절실합니다. 맹추위가 몰아닥친 이 겨울, 나라의 앞날이 기로에 섰습니다.

11월 30일 앵커의 시선은 '불만의 겨울'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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