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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신동욱 앵커의 시선] 공은 둥글다

등록 2022.12.01 21:49 / 수정 2022.12.01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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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사상 최악의 오심으로 꼽히는 것이 '신의 손'입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가 헤딩을 하는 척하며 왼손으로 공을 쳐 넣은 것이 골로 선언되면서 전 세계적인 논란을 불렀습니다. 그래 놓고 마라도나는 "얼마간은 마라도나의 머리로, 얼마간은 신의 손으로" 얻은 골이라고 얼버무렸습니다. 그 오심 덕분에 아르헨티나는 8강 전을 승리했고 우승까지 거머 쥐었습니다.

한일 월드컵에 독일의 노벨상 수상 작가 귄터 그라스가 축시를 바쳤습니다. "천천히 축구공이 하늘로 떠올랐다… 고독하게 시인은 골대 앞에 서 있었고, 그러나 심판은 호각을 불었다. 오프사이드" 축구광이었던 그는, 홀로 세상을 앞서가는 시인의 운명을 축구로 노래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시인이 선 자리가 오프사이드라며 멈춰 세우곤 합니다. 그 볼멘소리처럼 오심이 가장 많은 게 오프사이드 판정입니다.  

카타르 월드컵 개막 첫 골이 무효가 된 것을 시작으로, 오프사이드 판정이 잇따라 승부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와 독일이 사우디와 일본에 역전패한 이변도, 노골 선언이 잇달면서 경기 흐름이 바뀐 탓이 컸습니다. 이번 대회에 처음으로 적용된 첨단 판독 시스템은 오프사이드를 1밀리 차이까지 잡아냅니다. 추적 카메라 열두 대를 동원해 선수의 관절 움직임을 스물아홉 개 포인트로 인식하는 시스템이라고 하지요.

공인구 안에는 1초에 5백 번씩의 정보를 파악하는 초정밀 센서가 들어 있습니다. 인간의 감각으로는 도저히 구별해 낼 수 없는 미세한 차이까지 완벽하게 구별해 냅니다. 그 바람에 호날두가 동료의 슛을 제 머리로 골인시킨 것처럼 세리머니까지 했다가 망신을 당했습니다. 마라도나가 14년 동안이나 가슴앓이를 하다가 뒤늦게 실토한 것과 비교하면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덕분에 "오심도 축구의 일부"라는 체념 대신, 공평한 기회를 말하는 "공은 둥글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가고 있습니다. 위선과 협잡이 판치는 세상에서 "정의는 축구장에 있다"는 시인의 축구론처럼 말이지요. "그들의 경기는 유리처럼 투명하다. 누가 잘했는지 못했는지, 수천 만의 눈이 지켜보는 운동장에는 위선이 숨을 구석이 없다" 그러기에 시인은 그라운드에 넘치는 생명력을 찬미합니다. "하늘이 내려다보는 푸른 잔디 위에, 너희들의 기쁨과 슬픔을 묻어라"…

내일 밤 우리의 눈부신 젊음들이 조별 예선 마지막 결전에 나섭니다.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라"는 시인 김수영의 호령처럼, 축구라는 한 편의 아름다운 시를 써 내려가기를 바랍니다. 거칠고 각박한 일상에 지친 우리를, 승패를 넘는 감동으로 일으켜 세워주기를 기다립니다.

12월 1일 앵커의 시선은 '공은 둥글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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