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이메일보내기
  • URL복사
사회

[신동욱 앵커의 시선] 꺾이지 않는 마음

등록 2022.12.05 21:51 / 수정 2022.12.05 21:54

  • 페이스북
  • 트위터
  • 이메일보내기
  • URL복사


"전쟁도 졌는데 시합도 지겠지"

2차대전 패전 후 처음으로 서독이 1954년 스위스 베른 월드컵에 출전합니다. 독일 민족이 전범의 굴레와 피폐한 경제에 짓눌린 채 패배의식에 빠져 있던 때였지요. 하지만 서독은 놀라운 투지로 연승을 거두며 결승에서 세계 최강 헝가리와 다시 만납니다.

2대0으로 끌려가다 세 골을 터뜨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기적을 실현해 냅니다. '베른의 기적'은 독일인에게 재기의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으며 '라인강의 기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서독 감독이 남긴 말은 영원한 축구 명언이 됐습니다.

"공은 둥글고 경기는 90분입니다!" 

그런데 경기는 90분에 끝나지 않았습니다. 추가시간에 들어가자마자 "월드컵 92년 역사에서 가장 격정적으로 끝난 조별리그 경기"라고 격찬 받은 순간이 시작됐습니다.

손흥민이 70미터를 홀로 질주해 포르투갈 수비수 다리 사이로 절묘한 패스를 밀어줍니다. 듬직한 황희찬이 한 점 흔들림 없이 골로 연결합니다. 보고 또 봐도 질리기는커녕 전율이 그치지 않는 명장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감동적인 드라마일지언정 '도하의 기적'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피와 땀과 눈물로 쌓아온 힘과 실력과 의지의 산물이었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태극기에 쓴 이 믿음,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손흥민 선수도 이 값진 승리가 어떻게 이뤄진 것인지를 짧고 정확하게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고, 여러분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손흥민은 마스크를, 황인범은 머리 붕대를 벗어 던졌습니다. 김민재와 황희찬은 부상을 무릅쓰고 기어이 뛰겠다고 나섰습니다. 다들 넘어지고 쓰러져도 몸이 부서져라 뛰고 또 뛰었습니다. 

지친 국민을 환희와 감동으로 부축해 세우고, 둘로 깊이 갈라져 반목하는 나라를 '팀 코리아'로 묶어 줬습니다.

'베른의 기적'을 이끈 서독 감독은 "한 경기의 끝은 다음 경기의 시작"이며 "가장 어려운 경기는 늘 바로 다음 경기" 라고 했습니다. 그렇듯 우리는 내일 새벽 다시 세계 최강 브라질과 맞섭니다.

지난 세 경기가 그랬듯, 또다시 여한 없는 승부를 보고 싶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토해내는 거친 숨소리, 절절한 탄식과 환호를 듣고 싶습니다. 영웅이 사라진 시대, 축구 영웅들이 펼쳐놓는 한바탕 서사, 그 축제의 생명력을 누려보고 싶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할 겁니다.

펠레가 말했듯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축구를 사랑하는 것', 그리고 즐기는 것이니까요. 그래도 다시 한번 이겨주기를 바라는 제 속마음을 숨기기는 어렵군요.

12월 5일 앵커의 시선은 '꺾이지 않는 마음' 이었습니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