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에 가장 강력했던 태풍 산바가 상륙한 날이었습니다. 비바람 몰아치는 여의도 국회 앞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일인 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곁에는 경찰관이 한 시간이나 지키고 서서 우산을 받쳐주고 있었지요.
장애인 운동가 이종욱씨와 기동대 전승필 경위였습니다. 퍼붓는 빗속에 두 사람이 묵묵히 함께하는 사진과 감동을, 기억하는 분이 많을 겁니다. 이 씨는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보장해달라"는 피켓을 들고 나왔습니다. 바람이 드세서 우산을 들지 못한 채 비를 흠뻑 맞고 있었던 겁니다.
그는, 그날 릴레이 일인 시위가 "내가 해야 하는 일이고, 스스로 약속한 일이었기에 떠나지 않았다"고 했지요. 국회 앞 장애인 일인 시위는 이듬해 2월까지 200일을 이어가며 하나의 본보기가 됐습니다.
거리에서 장애인을 자주 만나는 나라가 선진사회라고 합니다. 그러려면 장애인이 쉽게 다닐 수 있는 기반시설과 함께 꼭 필요한 것이 세심한 사회적 배려입니다. 우산을 받쳐준 경찰관에게서 우리는 그 희망을 봤습니다.
하지만 우리 장애인 복지 지출은 OECD 평균의 3분의 1밖에 안 됩니다. 전장연이 예산 확보를 내걸고 시작한 지하철 시위를 많은 시민들이 감내한 것도, 장애인의 열악한 여건에 공감하는 까닭이 컸습니다. 그래서 출근길에 발을 동동 구르는 생업 지장과 불편을 묵묵히 견뎌낸 것이지요.
하지만 어떤 일이든 지나치면 덜함만 못한 법입니다. 시민을 볼모로 잡는 불법 시위가 1년 넘게 이어지면서, 시민들의 인내심도 바닥에 다다른 듯합니다. 역효과가 누구에게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같은 장애인들이 먼저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규모가 큰 지체장애인협회가 이미 지난 3월 "도를 넘은 불법 강경 투쟁이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굳히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사회적 동의와 국민의 지지를 무시한 장애인 운동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고도 했습니다.
지난주엔 '지하철 운행 정상화를 위한 장애인연대' 회원들이 현장에 나와 시위를 가로막기에 이르렀습니다. "지하철 운행 방해는 전체 장애인에 대한 혐오만 키울 뿐" 이라는 겁니다. 그동안 시위를 바라본 시민과 침묵하는 다수 장애인들이 하고 싶었던 말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전장연은 예고 없이 벌이는 게릴라식 기습 시위로 강도를 높였습니다. 목적을 달성하려고 다수 시민에게 고통을 강요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전장연 시위는 입법권을 가진 국회와 예산을 편성하는 정부를 상대로 해야 옳습니다.
다행히 오늘 지하철 시위를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말고 시민의 발을 볼모로 잡는 일은 이제 제발 그만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12월 20일 앵커의 시선은 '누구를 위한 시위인가?'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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