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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취재후 Talk] 1년간 손놓고 있다가 하루만에 법해석 바꾼 산자부…전국 3000개 학교 '대혼란' 불렀다

등록 2023.01.31 11:00 / 수정 2023.01.3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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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통상자원부의 늑장 행정이 전국 학교를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전국 초·중·고 약 3000개교는 지난해 초부터 학교 안에 '전기차 충전시설'을 만들어 왔습니다. 데드라인은 지난 27일까지였습니다. 설치하지 않으면 최대 3000만 원이라는 엄청난 이행강제금이 부과되는 개정 '친환경자동차법'이 지난해 시행됐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설치율은 전국 평균 '10%'에 불과했습니다. '전기차 충전시설'을 만들면, 학교를 주민들에게 개방해야 하는 문제 때문입니다.

지난해 11월 통화했던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2023년 1월까지 설치를 어려워하는 학교가 많아 기간 연장을 요구해놓고 그저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특히 학교 개방 문제 때문에 학교장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일선 학교들이 '의무화 데드라인'으로 알고 있었던 지난 27일 산자부의 새로운 해석이 나왔습니다. 전국 학교가 전기차 충전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시점은 23년 1월까지가 아닌, 24년 1월까지라는 겁니다. 학교를 개방하는 것도 의무가 아니라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지난 1년 간, 전국 약 3000개 학교가 '전기차 충전시설' 문제로 고민하는 동안 조용했던 산자부가 '의무화 데드라인'에 닥쳐서야 법 해석을 한 겁니다.

일선 학교들로선 설치의무 시점을 1년 더 벌게 됐습니다. 개방 의무도 없다고 하니, 고민도 사라진 셈입니다. 그저 좋아할 수만 있을까요. 1년 동안의 혼선은 누가 책임질 수 있는 걸까요.

■'있다→없다' 하루 만에 바뀐 해석
'친환경자동차법'을 주무하는 산자부 관계자는 '개방 의무'와 관련해 하루 만에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놨습니다.

지난 26일 산자부 관계자와 전화연결이 됐습니다. '전기차 충전시설을 만들면 학교를 개방해야 해서, 일선 학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학교장 재량으로 개방을 막을 수도 있는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산자부 관계자는 "학교에서 학생들 안전 문제를 이유로 들면, 예외는 인정해주려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개방 의무는 있지만, 학생 안전 문제도 중요하니 이를 '예외사항'으로 봐주는 방안을 논의하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루 만에 산자부 입장은 달라졌습니다. TV조선이 학교들의 불안감을 집중 보도한 직후 부랴부랴 관계 법령을 다시 뒤져본 겁니다.

산자부 관계자는 지난 27일 "법률 규정을 다시 따져봤더니, 학교는 외부 개방 의무 대상 자체가 아니다"고 했습니다. '어제는 그렇게 말씀을 안 했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확인을 못하고 설명을 잘못드렸었다"고 인정했습니다.

전기차 충전시설을 만들면, 학교를 개방해야 하는 문제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때도 다뤄졌던 내용입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병욱 의원은 당시 "친환경자동차법에 따라, 학교는 전기차 충전시설을 만들어 주민들에 개방해야 하는데, 교내 진입하는 차량 때문에 학생 안전을 보장할 수 없어 학교들이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산자부가 하루 만에 해석을 바꾸면서, 김 의원은 국정감사 기간 동안 '하지 않아도 될 고민'을 한 셈이 됐습니다.

■관망만 한 교육부
일선 학교들이 23년 1월을 '데드라인'으로 여기고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를 고민하는 동안 교육부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요.

교육부 관계자는 30일 "전기차 충전시설을 설치하는 문제와 관련해 교육부는 어떤 지침도 내린 적이 없었다"면서 "일선 교육청들이 친환경법을 보수적으로 해석하고 준비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법령을 다시 봤는데, 23년 1월까지 전기차 충전시설을 설치해야 하고, 개방 의무도 있다고 해석하는게 맞아 보이기도 한다"면서 "애매모호한 부분들이 있어 교육청 담당자들이 헷갈린 것 같다"고 했습니다.

'친환경 자동차법'을 해석하는 건 주무 부서인 산자부 몫입니다. 하지만 3000개 학교가 대당 1500만원 비용을 들여 전기차 충전시설을 만들고, 개방 의무 문제로 지자체·주민들과 갈등을 겪고 있는 동안 교육부는 어떤 대처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움이 남습니다.

■교직원 '두 명' 만을 위한 충전시설?
'친환경 자동차법'에서 전기차 충전시설을 의무적으로 만들어 개방하라고 한 건, 늘어나는 전기차 수요에 맞춰 주민들이 충전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그런데 산자부 해석대로라면 학교는 전기차 충전시설을 의무적으로 만들어야 하지만, 주민들은 해당 시설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럼 누구를 위한 충전시설을 만들라는 걸까요.

경북 지역의 한 중학교 관계자는 "교내 교직원이 100여 명 정도 되는데, 전기차를 끌고 다니는 직원은 단 두 명 뿐"이라며 "그 두 명을 위해 학교에 1500만원 짜리 충전시설을 의무적으로 만들라고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지난 2021년 '친환경자동차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이학영 의원은 "개정안을 통해 전기차 사용자들인 주민들 수요에 맞게 정부나 지자체가 충전시설 설치와 운영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고 했습니다.

교직원 만을 위한 전기차 충전시설도 이 의원의 입법 취지와 맞다고 보기엔 조금 민망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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