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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신동욱 앵커의 시선] 무엇을 위한 탄핵입니까?

등록 2023.02.09 21:51 / 수정 2023.02.09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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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라! 반역자!" "골드스타인! 골드스타인!" 극장을 가득 메운 당원들이 '인민의 적' 골드스타인을 저주하며 증오와 분노를 터뜨립니다. 그러지 않으면 끌려나가 사라지지요. 하루 한 번씩 2분 동안 '빅 브라더'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2분 증오' 입니다. 암울한 세계, 디스토피아를 그린 '1984'의 주인공은, 이 광기 어린 집단 세뇌가 싫습니다. 그는 '자유란 2 더하기 2가 4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지요. 하지만 사상을 감시하는 고급 당원에게 끌려가 고문을 당한 끝에 진실을 포기합니다. "(현실은) 개인의 정신이 아니라, 집단적이고 영원한 당의 정신 속에 존재하거든" "(2 더하기 2는) 5입니다"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는 단순한 교실 영화가 아닙니다. 좋은 대학 가는 것이 유일한 목표인 학교의 현실을 통해 집단 전체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이야기입니다. 획일적 공부 대신, 꿈과 자유를 가르쳐준 선생님이 떠나는 날, 학생들은 하나둘 책상 위에 올라서서 전송합니다. 

"가 179표, 부 109표, 무효 5표로써…" 이상민 행안부 장관 탄핵 소추 표결에서, 민주당은 이탈표가 거의 없었다고 자랑하듯 밝혔습니다. 여야 의석 분포가 그러니까요. 그렇다면 탄핵안 추진을 강하게 반대했던 민주당 의원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요. 적어도 서른 명 넘는 의원들은, 탄핵 추진이 또 한 겹 이재명 대표 방탄으로 비칠 수 있다고 걱정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헌재가 결국 탄핵의 정당성을 인정할 법적 하자를 찾기 어려울 거란 전망도 적지 않았습니다. 헌재에서 기각되면 민주당으로의 역풍이 드셀 거라는 얘기지요. 민주당 안에서는 소수의견이지만, 정계 안팎에선 많은 이가 공감하는 다수의견입니다. 하지만 당론 채택 이후 표 단속에 나섰고, 표결은 일사불란했습니다. '다름'을 허용하지 않는 집단주의, 늘 반복돼온 좌표 찍기와 집단 린치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지금의 의석 분포로는 민주당이 하고자 한다면 못 할 게 없습니다. 하지만 합리적 이유 없이 머릿수로만 밀어붙인다면 그거야말로 '입법 폭주'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의회주의 포기" "헌정사의 오점" 이라고 했습니다.

윤석열 정부 역시 사태를 여기까지 몰고 온 책임이 가볍지 않습니다. 핼러윈 참사는 경찰서장을 비롯한 일선 공무원 몇 명이 법적 책임을 지긴 했지만 과연 그게 최선일까 하는 아쉬움이 적지 않습니다. 백쉰아홉 목숨이 스러진 지 백일이 넘도록 정치적, 도의적 책임이나마 지는 정무직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경찰청과 소방청을 관할하며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행안장관은, 오만한 언행으로 국민과 유족의 가슴을 헤집었습니다.

때문에 이 장관 역시 헌재의 최종 판단과 관계없이 탄핵소추를 당한 것 자체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겁니다. 그렇듯 '헌정사의 오점'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찍은 게 아닙니다. 정치가 실종된 시대, 끝없이 평행선을 질주하는 여야의 합작품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2월 9일 앵커의 시선은 '무엇을 위한 탄핵입니까?'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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