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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차담차담] 1824년, 노선버스가 다녔다

등록 2023.05.25 09:00 / 수정 2024.01.1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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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자동차, 이거였다고? ②

증기기관은 외연기관(外燃機關)이다.
기관 외부에서 연료를 태워 물을 끓인다.
여기서 얻은 고온·고압의 증기로 피스톤을 운동시킨다.

원자력발전용 증기터빈


증기기관은 덩치가 크고, 열효율이 낮아 최근엔 거의 쓰지 않는다.
업데이트 버전이 회전식 증기기관, 증기터빈이다.
화력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 등에 들어간다.
화력은 석탄, 원자력발전은 원자로가 연료다.

2025년 진수 예정인 미국 핵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CVN-80)의 그래픽 이미지. 새로 개발한 A1B 원자로 2기를 연료로 가압경수로 증기터빈을 돌린다. 194MW의 추진력을 뿜어낸다. 발전용 증기터빈으로는 300MW 이상의 전력을 제공한다.


핵 항공모함도 선내 원자로를 통해 증기터빈을 돌려 추력을 얻는다.
장점은 무엇일까?
원자로 교체 주기가 올 때까지 연료 걱정 없이 작전할 수 있다.
원자로 수명은 50년 안팎, 핵연료 교체 주기는 25년 정도다.

리처드 트레비식의 증기자동차 구조도


리처드 트레비식은 코니시 광산의 기사였다.
평생 글을 몰랐지만, 어려서부터 공학에 재능을 보였다.
광산엔 와트의 저압기관이 있었는데, 효율이 떨어졌다.

효율을 높이고 크기는 줄인 고압기관을 만들어 이를 자동차에도 적용했다.
1801년 크리스마스 이브, 영국 남서부 콘월에서 시운전했다.
막판에 증기의 열을 견디지 못해 고장이 났다.

트레비식 증기자동차를 복원해 시운전하는 모습


하지만 제동장치에 조향장치까지.
퀴뇨의 그것과 비할 게 아니었다.
상업화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칙칙폭폭 악동(Puffing Devil)'.
증기를 뿜어내는 '모습을 보고' '소리를 들으면' 딱 그랬다.

1804년 선보인 최초의 증기기관차 '페니다렌'


1804년엔 이를 바탕으로 '페니다렌'을 제작했다.
최초의 증기기관차다.
페니다렌은, 제작을 한 사우스웨일스의 제철소 이름이다.

그런데 증기기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선로가 자꾸 깨졌다.
페니다렌은 1814년에야 제대로 된 선로를 만났다.
조지 스티븐슨이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연철' 선로를 개발한 것이다.
스티븐슨은 선로의 '포준 궤'도 제시했다.
이 때문에 트레비식은 '증기기관차의 아버지', 스티븐슨은 '철도의 아버지'로 불린다.

핸콕의 증기버스 그림. 증기엔진 트랙터가 6인승 버스를 끌었다.


월터 핸콕은 증기자동차를 상업적으로 처음 활용했다.
1824년의 증기버스다.
런던 판톤빌에서 시내 중심부를 왕복하는 정기노선이었다.
운전수 2명과 화부 1명이 탄 증기엔진 트랙터가 6인승 버스를 끌었다.

아메데 볼레의 오베이상트. 운전수는 앞 정중앙. 화부는 뒤에 탔다


아메데 볼레의 집안은 주조가 가업이었다.
종(鐘)이나 보일러를 주로 만들었다.
볼레는 자동차 마니아였다.
보일러를 증기자동차용으로 시제작해 마차에 얹었다.
성능이 괜찮았다.

1873년 볼레는 자동차 제작자로 이름을 올렸다.
승객 6명을 태우고, 최고 시속 30km 이상을 냈다.
달릴 때 생각보다 조용해 '오베이상트(말 잘 듣는 아이)'로 이름 붙였다.
다만 무게가 3톤에 달했고, 50km마다 460리터의 물을 채워야 했다.

오베이상트의 개량형 '라 망셀'


이를 개량한 것이 1878년의 '라 망셀'이다.
2기통 증기기관의 힘이 뒷바퀴에 실렸다.

지게차처럼 뒷바퀴로 조향했던 '라 마르퀴스'와 실제 주행 모습


드-디옹 부통은 '라 마르퀴스'를 1884년 개발했다.
앞바퀴 구동, 뒷바퀴 조향이었다.
오늘날의 지게차와 유사하다.
파리에서 베르사유까지 26km/h로 달렸다.

복원한 스탠리 스티머 증기자동차


1897년 미국 스탠리 형제는 부피와 무게를 줄이는데 성공했다.
보일러 예열시간도 덩달아 줄었다.
게다가 인화성 액체는 무엇이든 땔감으로 쓸 수 있었다.
이듬해 '스탠리 스티머'를 양산했다.


맥킨리 대통령은 1899년 스탠리 증기자동차를 '동승'으로 시승했다. 자동차를 탄 첫 미국 대통령이다


25대 대통령 윌리엄 맥킨리(재임 1897~1901).
백악관에 1호차가 없던 시절이다.
스탠리는 1899년 정중하게 시승을 요청했다.
짧은 동승이었지만, '공식 일정'에 잡혔다.
맥킨리는 '공식 일정으로 자동차를 탄' 첫 미국 대통령이다.
(이 내용은 '각국 수반의 자동차' 편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시속 200km를 처음으로 돌파한 스탠리 증기자동차


스탠리는 1906년 로켓(Rocket) 모델로 세계 기록을 세웠다.
시속 204km/h.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였다.
다만 폭발 위험이 커 상용화하지는 않았다.

증기자동차의 최종판 버전인 도블. 도블 이후 증기자동차는 맥이 끊겼다.


에브너 도블은 1922년 모델 E를 발표했다.
1931년까지 24대를 생산했다.
양산된 증기자동차의 최종판이다.

이후로는 내연기관 자동차의 성능에 밀려났다.
미국의 유명 진행자 제이 레노는 스무 번째 모델을 소유하고 있다.
국내에 증기자동차가 도입된 적은 없다.

제이 레노는 도블 스무 번째 모델을 소유하고 있다.


화석연료(가솔린·디젤)의 환경오염 문제가 제기됐던 1960년대.
캘리포니아에서 증기자동차 마니아들이 부활을 시도했다.
상대적으로 저공해였다는 이유로 주 정부의 지원금까지 받았다.
결과는 어땠을까.

프로토타입을 만든 뒤, 계획 자체를 '없었던 일'로 했다.
고질적인 단점인 무게 문제와 불완전연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게다가 광화학 스모그(화석연료) 대신 더 큰 문제가 나왔다.
런던형 스모그(난방형)를 유발했기 때문이다.

최초의 자동차였던 증기는 지금도 지구상 전력의 80%를 책임진다.
미국의 생리학자 로렌스 헨더슨의 말이다.
"증기기관이 과학에 빚진 것보다, 과학이 증기기관에 빚진 것이 더 많다."


사진 출처 : 나무위키, 위키피디아, 프랑스 국립기술공예박물관, 런던과학박물관, 두산에너빌리티, 삼성화재교통박물관, Navsource Naval History, Getty Images, Jay Leno's Garage


<다음 회에 '최초의 자동차, 이거였다고?'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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