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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취재후 Talk] 새로운 게임 사회를 향한 갈망…국립현대미술관 '게임사회'

등록 2023.05.26 10:23 / 수정 2023.05.26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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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게임사회' 리뷰

다니엘 브레이스웨이트 셜리 '젠장, 그 여자 때문에 산다'

게임이 사회를 반영한다면, 게임의 한계는 곧 사회의 한계일까? 아니면 게임은 사회의 상상력을 초과해 존재할 수 있을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 '게임사회'는 사회와 게임의 동기화 과정을 짚어보며, 관람객으로 하여금 게임을 둘러싼 다양한 맥락을 고민하게 한다. 게임이 가지는 배타성과 폭력성에 주목하거나(작품명 '젠장, 그 여자 때문에 산다'), 비폭력적인 게임의 가능성을 그려보도록 이끈다('플라워'). 여성과 장애인이 쉽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함으로써 비장애인 남성 사용자를 중심으로 설계된 세계에 타격을 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전시의 효용이라면 게임과 무관하게 살아온 관람객조차 스스로의 경험과 의식이 동시대 게임의 문법과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고받는지 돌아보도록 한다는 점일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개별 게임의 내용보다 반응하는 매체로서 게임의 특성이었다. 작품의 구성이나 메시지가 어떻든 대부분의 게임에서 이용자는 '절대적인 행위자'가 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이용자가 조작을 가하면 게임 속 상황은 즉각적으로 달라지는데, 이는 게이머에게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주는 동시에 어떤 환상을 품게 한다. 말하자면 스스로 주변 환경을 설계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이다. 게임 속에서 세계는 인간의 행위에 의해서만 굴러가고, 플레이어를 제외한 모든 요소는 배경이자 도구가 된다. 인간이라는 주체를 절대화한다는 측면에서 게임의 법칙은 철저하게 근대적인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는 셈이다. 아무것도 없던 가상 공간이 플레이어의 조작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어 간다는 어느 게임의 발상('마인크래프트')은 그런 맥락에서 섬뜩하고, 여기에 한계란 없다는 전시 설명에 이르면 관람객은 망연해진다. (인간이 탐험할 수 없는 세계는 없다는 근대적 욕망과, 그 욕망을 실현시키는 사람으로서의 플레이어!)

현실 세계에서 우리는 행위를 가로막는 숱한 이해관계자와 맞닥뜨리며 상황들을 가까스로 통과해 나간다. 때로는 설득하고 협상하며, 그보다 많은 경우 부딪치고 충돌한다. 행위가 관철되기까지 무수한 마찰을 견뎌야 하므로, 세계 내 존재로서 스스로의 위치를 자각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게임에서는 이런 과정이 매끈하게 생략된다. 게임 세계에서의 분투는 몇 가지 가능한 경우의 수로 축소되며, 이는 현실의 덜그럭거림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않는다).

동시에 게임 안에서 플레이어의 행위성은 무척 제한적이기도 하다. 관심경제의 디자인 기술에 관해 데방기 비브리카가 쓴 논문은 여기에서도 유효한 통찰을 제공하는데, 그에 따르면 행위 주체성 대 구조의 논쟁에서 행위자는 결코 '정교한 알고리즘'을 이길 수 없다. 알고리즘 바깥으로 나가는 선택지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으므로, 행위자의 사고 역시 그 바깥으로 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플랫폼에서 수백 명의 엔지니어와 디자이너가 우리의 모든 움직임을 예측하고 계획한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논의의 방향을 윤리적 설득을 하는 구조 쪽으로 옮기는 것이 더욱 타당해 보인다." (제니 오델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에서 재인용)

비브리카의 지적에서 힌트를 얻어 게임의 구조를 완전히 새롭게 디자인해 볼 수는 없을까?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고 겪어나가는 방식을 그야말로 뿌리부터 뒤집는 게임을 설계한다면? 가령 비인간 존재의 행위성을 인간과 동등한 수준으로 끌어올린다거나 배경으로만 존재했던 사물이 서사를 좌우하는 열쇠로 기능하는 게임이라면?

전시장을 나오면서 나는 비슷한 기대를 품어볼 수도 있게 됐다. 게임이 이다지도 충실히 현실과 상호작용한다면, 우리의 실재를 새롭게 구성할 단초 역시 게임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게임에 예술성이 있다면 아마도 여기에 있을 것이고, 그것이 미술관이 게임을 미술계의 자장 안으로 끌고 들어온 이유일 것이다. 확실히 우리는 게임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이번 전시는 그런 논의의 장을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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