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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취재후 Talk] 결혼이 능력의 지표가 됐다…'눈높이' 낮추기 어려운 韓 사회

등록 2023.08.21 18:04 / 수정 2023.08.21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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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 방송화면 캡처

출산율이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한 여성이 가임기간 동안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이 지난해 0.78명이었다.

특히 서울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59명에 그쳤다.

10년 전인 2012년 1.30명에서 거의 40% 가까이 줄어든 수치이다.

문제는 올해 합계 출산율이 지난해 0.78명보다 더 떨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통계청은 올해 출산율은 0.73명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출산율이 이렇게 해마다 떨어지고 있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혼인율 감소의 영향이 가장 크다.

특히 우리나라는 결혼제도 밖에서 아이를 잘 낳지 않는다.

출산의 기반은 결혼이어야 한다는 유교 문화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실제 2021년 기준 한국의 혼외 출생률은 2.9%에 불과하다.

이는 다른 OECD 국가와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데, 칠레와 멕시코는 혼외 출생률이 70%가 넘고 프랑스와 노르웨이, 스웨덴 등 유럽 국가는 50%가 넘는다.

OECD 회원국 평균도 41.9%에 달한다.

출산이 결혼의 테두리 안에 있어야 정상이라는 생각에 변화가 생기고 혼외 출산이 늘어나면 출산율도 늘어나겠지만, 우리나라 국민 정서상 쉽지 않다.

우리의 이웃 나라인 일본도 혼외 출생률이 2.4%밖에 안 된다.
전통적인 가족관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쉽지 않는 데다, 혼외 출산을 장려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TV조선 방송화면 캡처

■ 저출산 최대 '원인'은 혼인율 급감

결국 혼외 출생률이 극히 낮은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에서는 혼인율을 높이고, 혼인 건수를 늘리는 것만이 합계 출산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혼인율을 끌어올리는 것을 저출산 정책의 최우선적 목표로 삼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 혼인 건수는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특히 초혼 연령이 늦어지는 추세다.

지난해 기준 남성의 평균 초혼 연령은 33.7세, 여성은 31.3세이다.
10년 전인 2013년과 비교하면 1.5세, 1.7세 늘었다.

혼인이 늦어지는 게 무슨 문제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결혼이 늦어지면 노산 등으로 아이를 낳고 싶어도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첫 아이의 출산 연령이 갈수록 올라가는 추세를 감안하면 둘째 아이나 셋째 아이를 가지는 비율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초혼 연령을 앞당겨야 출산율이 올라갈 수 있다는 얘기다.

더 심각한 건 초혼 연령만 늦어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결혼을 안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25세~49세 남성 중 미혼인 비율은 2010년 35.3%에 불과했지만 2015년 40.2%, 2020년 47.1%까지 늘어났다.

여성의 미혼 비중도 2010년에 22.6%였지만 2020년 32.9%로 증가세를 보였다.

결혼적령기 남성 중 절반이 독신이고, 여성 3명 중 1명이 미혼인 셈이다.

다만 5년 내로 혼인을 가장 많이 할 것으로 예상되는 1990년대생의 최근 3년간 혼인율 정보에 대한 데이터를 통계청이 가지고 있지 않아서([뉴스9/리포트][단독]90년대생 출산율 반등?…연령별 최신 혼인율도 모르는 통계청. 2023. 3.10) 연령대별 미혼 비율을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 2030 MZ 세대, 결혼 안 하거나 늦추는 이유는?…문제는 경제력

이처럼 추세적으로 결혼을 안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출산율이 급감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 결혼 적령기의 남녀가 혼인을 안 하거나 혼인을 늦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조사 등을 종합해보면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크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이 내놓은 올해 '결혼, 출산에 대한 2030 세대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남성들이 결혼을 원하지 않는 이유로 첫 번째가 '경제적으로 불안정해서(42.6%)'를 꼽았다.

그 다음 이유가 '결혼 조건을 맞추기 어려워서(40.8%)'이다.

대부분 응답이 경제적 여건과 관련되어 있다.

혼인을 하려면 가장 많이 들어가는 비용이 주택 마련 비용이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나라 수도인 서울 기준으로 올해 서울 아파트 전셋값 평균은 약 5억 62만원이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0억 원이 넘는다.

사회초년생 신혼부부가 돈 많은 부모의 지원 없이는 서울 아파트에서 전세로 살거나 집을 사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결혼을 가장 많이 하는 30대 직장인이 세전 기준으로 월 400만 원 미만의 월급을 받는 비율이 75%에 달한다.

월 200만 원대를 받는 비중이 가장 많다.

세금 다 떼고 매달 카드 값 갚고, 식비 등으로 지출하고 나면 목돈을 모으는 것조차 쉽지 않다.

세전 월 300만 원을 받아도 나가는 지출을 고려하면 한 달에 100만 원 이상 저축하기가 어렵다.

사회 초년생인 남성 직장인이 대학교를 졸업하고 쉬는 기간 없이 바로 취업했더라도 결혼 적령기인 35살까지 8년간 일을 해도 겨우 1억 원을 모은다.(매달 100만 원 저축)

이렇게 근로소득만으로는 20년을 일해도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5억 원)과 매매값(10억 원)에도 턱없이 못 미친다.

신혼 집 마련부터 어려운 상황인데, 결혼을 꿈꾸는 건 언감생심이다.

■ '눈높이' 높아진 이유는?…'상향혼 비율' 가장 높은 나라, 대한민국

젊은 세대에서 혼인을 안 하는 건 이처럼 높은 경제적 부담도 크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바로 결혼 적령기에 해당하는 젊은 세대의 '눈높이'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눈이 높아지게 된 건 과거와 달리 저성장이 고착화되면서 계층 이동 가능성이 크게 낮아지고 부의 불평등이 심화된 경제적 상황과 무관치 않다.

신혼 집으로 들어가야 할 부동산 가격이 고공행진하고 함께 살아가는 데 들어가는 지출이 워낙 크다 보니, 배우자의 경제적 능력을 더욱 따지는 현실로 내몰리게 된다.

이른바 '상향혼'에 대한 욕구를 부추기는 것이다.

상향혼의 욕구는 통계로도 증명된다.

한국은행이 올해 1월 발표한 '소득 동질혼과 가구구조가 가구소득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 맞춰서 끼리끼리 하는 결혼 비율(동질혼)이 한국이 가장 적은 것으로 드러났다.

소득 동질혼 지수는 1에 가까울수록 많은데, 한국은 1.16으로 OECD 34개국 가운데 최저를 기록했다.

보고서에서는 고소득 남성이 저소득 여성과 결합하는 빈도가 소폭 높았다고 지적했다.

■ 경제력 낮으면 결혼 어려운 가혹한 '현실'

경제력이 낮으면 결혼조차 쉽지 않은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또 다른 통계가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소득 상위 10%인 30대 중후반의 남성은 절대 다수인 91%가 결혼 경험이 있다.

하지만 소득 하위 10%는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47%만 결혼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소득이 낮아질수록 30대 남성의 혼인율은 계속 떨어진다. 바꾸어 말하면 여자는 경제력이 없는 남자와는 만나지 않고, 경제적 능력이 있는 남성과 결혼을 하고 싶어 한다는 얘기이다.

이처럼 경제적 능력이 결혼 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성의 상향혼에 대한 욕구가 커질수록 남자의 경제적 능력과 소득에 따른 혼인율 차이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이 2030 여성들에게 결혼을 안 하는 이유를 물었는데 '혼자 사는 삶이 더 행복해서(46.3%)'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른 사람에게 맞춰 살고 싶지 않아서(34.9%)'가 뒤를 이었다.

돌려 말한 거지만, 쉽게 말해서 경제적 능력이 없는 남성과 같이 살 바에야 혼자 사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런데 최근에는 남성조차도 '상향혼' 욕구가 커지고 있다. 과거 20년 전에는(2005년) 무직 상태에서 결혼한 여성은 51.8%에 달했는데, 지난 2016년에는 그 비율이 33.9%로 급감했다.

무직 여성보다 일 하는 여성을 선호하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맞벌이 가구 비중도 2013년 43.3%였는데 2021년 46.3%로 해마다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요약하자면 살림살이가 점점 팍팍해지다 보니까 나보다 더 좋은 조건을 갖춘 상대를 만나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고, 조건이 맞지 않다면 차라리 혼자 사는 것을 택하다 보니 혼인율과 출산율 급감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2030 미혼 여성 10명 중 5명이 결혼할 의향이 없다는 것은 자발적인 비혼의 결과라기보다는 자신의 경제적인 상황과 현실적인 조건보다 나쁘거나 비슷한 남성과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선언일 수 있다.

거기에다 미디어와 인스타그램 등 SNS의 발달로 남들과의 비교가 너무 만연해있고 남들이 얼마나 잘 사는지에 대한 비교 심리가 마음 속 깊이 내재되어 있다.

남들과 비교했을 때 내가 만나는 상대의 조건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절대적 경제력'보다 '상대적 경제력', 상대적 비교 우위가 더 중요해졌다.

객관적으로 잘 살아가고 있음에도, 주변에 다 잘난 사람들만 있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 효과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남과 비교하게 되면 불행해진다는 철학적 논쟁은 뒤로하더라도, SNS의 발달과 중독은 역설적으로 결혼 시장에서 결혼 문턱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TV조선 방송화면 캡처

■ 결혼이 능력의 지표가 된 세상…구조적 모순이 누적된 결과

그렇다고 갈수록 높아지는 개인의 눈높이를 낮추라고 권유할 수 없다.

개인의 눈높이가 높아진 데에는 2030 MZ세대에게 놓여져 있는 혹독한 사회 현실의 영향도 크기 때문이다.

지금은 돈을 잘 벌어야만 결혼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결혼도 능력의 지표가 되어버렸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결혼을 할 때 상대의 경제력만을 따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앞서 통계로 증명된 씁쓸한 현실은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한다.
현실을 도외시한 이상만으로 정책을 펼칠 수 없다.

개인에게 '올바른 결혼관'을 주입하기보다는 국가가 청년들이 결혼하기 좋은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무작정 "눈을 낮춰", "결혼할 때 성격이 제일 중요해" 이런 말 한 마디보다 청년들이 결혼하고 아이 기르기 편한 세상을 만들고 그런 말을 건넸을 때 더 울림이 있을 것이다.

저출산과 혼인율 급감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누적된 결과라서 쉽게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연애, 결혼, 출산'을 모두 포기한 삼포 세대가 등장한 건 그저 우연이 아니다.

높은 부동산 가격과 자본 소득 증가율에 미치지 못하는 근로소득 증가율, 부의 대물림 등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청년에게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건 너무나도 불행한 일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청년의 절규가 결혼 포기, 출산 포기로 이어지지 않도록 세심한 정책적 배려와 사회 구조적 모순의 타파가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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