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초유의 새벽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이 한 시간 51분이나 늦은, 다음 날 0시 36분에 나타나는 바람에 두 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했지요. 한 해 전 모스크바에서 50분을 대기한 건 약과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한 시간 45분을 기다렸듯 푸틴에게 당한 정상이 수두룩합니다. 그래서 '지각대장' 이란 별명이 붙었습니다. 하지만 이 지각이 의도된 고도의 심리전술이라는 해석이 있는가 하면 그냥 게으른 탓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런 푸틴이 4년 전 블라디보스톡에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당했습니다. 회담장에 30분을 지각했는데 김정은이 그보다 30분 더 늦게 나타난 것이지요. 그런데 당시 사정은 김정은이 훨씬 다급했습니다. 하노이 핵 담판이 결렬된 뒤 대북 제재의 우회로를 찾아 나선 회담이었으니까요. 하지만 푸틴은 "러시아도 완전한 비핵화를 지지한다"고 선언했지요. 김정은은 빈손으로 돌아서면서 "다시 방문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만난 두 사람의 처지는 180도 역전됐습니다. 푸틴은 회담장에 30분 먼저 와 기다렸습니다. 기지 입구까지 나와 반갑게 맞았습니다. 4년 전엔 김정은이 외교적 생명줄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이제는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군사적 생명줄을 붙잡으러 나섰습니다. 국방장관을 비롯한 '전시 내각'을 이끌고 극동까지 날아갔습니다. 북측 배석자도 군 서열 1, 2위를 비롯한 무기 거래 관련자가 대거 포함됐습니다. 회담장까지 북한이 탐내는 대륙간 탄도미사일과 인공위성 기술의 본산,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로 잡았습니다.
푸틴은 "북한의 인공위성 개발을 도우려고 여기에 왔다"고 했습니다. 김정은은 "제국주의에 맞선 전선에 언제나 함께하겠다"고 했습니다. 북한의 재래식 무기와 러시아의 탄도미사일 대기권 진입 기술을 맞바꿔 국제 제재를 뒤흔들겠다는 의도도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그 보스토치니 기지가 자리잡은 도시가 스보보드니 라는 곳입니다. '자유롭다'는 뜻이어서 일제강점기 우리 독립군이 '자유시'라고 불렀지요. 소련 붉은 군대가 고려 공산당과 함께 독립군 수백 명을 학살한 '자유시 참변'이 벌어졌던 바로 그곳입니다. 그로부터 백 년이 지난 거기에서, 러시아가 조선 공산당과 손잡고 첨단 군사기술을 팔아넘기려 하고 있습니다. 한-러 관계에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 한국민의 생명을 대놓고 위협하는 짓입니다.
소련이 북한에 무기를 지원해 6·25 남침 준비를 시켰던 악몽이 떠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4년 전에 김정은과 푸틴은 칼 한 자루씩을 선물로 주고받았습니다. 우리가 지닌 모든 역량과 수단을 총동원해 그 칼을 부러뜨려야 합니다.
9월 14일 앵커의 시선은 '잘못된 만남, 위험한 거래'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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