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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신동욱 앵커의 시선] 이재명이 선택한 길

등록 2023.09.21 20:20 / 수정 2023.09.25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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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어는 투명하고 가녀린 은빛 몸매를 지녔습니다. 얼음장 아래 우아하게 헤엄치는 빙어를 시인이 한 줄로 그려냈습니다.

'그 누가 유리창에 시린 창자만 그려 넣었나!'

빙어는 동물성 플랑크톤 먹이가 사라지는 겨울을 빈속으로 납니다. 그 끝자락에 알을 낳고 스러지지요.

시인이 빙어를 그리며 단식을 합니다.

'마음을 흘리면 그대로 그려지는 몸을 갖고 싶어서 식욕의 전원을 끈다'

빙어처럼 '얼음장 같은 선방(禪房)에서 금식하며 등뼈가 드러나도록 수행'합니다.

떠날 채비를 하는 개를 시인이 지켜봅니다.

'그는 가만히 곡기를 끊었다. 물만 조금씩 마시며 속을 비웠다. 불필요한 살들이 내리자 눈빛과 피부가 투명해졌다'

시인은 그 초연한 죽음이 앉은 채 떠나는 고승의 해탈 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구차하게 연명하는 인간이 적지 않습니다. 삶을 도둑질하듯 욕되게 산다 해서 '투생(偸生)' 이라고 하지요. '살기에 급급해 앞날의 재앙을 못 보는 자들은 자기가 무지한 존재라는 것도 모른다'는 옛 가르침에 나온 말입니다. 그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니지요.

"사즉생(死則生)의 각오로 민주주의 파괴를 막아내겠습니다"

이재명 대표는 단식을 시작하면서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애초에 '사즉생'이 아니라 '생즉사' 였던 것이지요.

이 대표는 석 달 전 국민에게 약속했던 불체포 특권 포기를 막다른 길에서 걷어찼습니다. "의사 표현이 안 될 정도" 였다는데 긴 입장문을 올려 다급하게 체포동의안 부결을 읍소했습니다. 법을 잘 아는 그가 이제는 구속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방증이 아닐까요. 구차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생즉사'의 인간 본색을 보며 분노보다 이제는 연민이 솟습니다.

이 대표는 한국 정치사에 남을 희대의 말 바꾸기로 단식 정치의 대미를 맺었습니다. 왜, 무엇을 위한 단식이었는지 스스로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사실 대선 이후 그의 모든 정치 행보가 오늘 여기까지를 염두에 둔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 출발점이, 아무 연고도 없는 민주당 텃밭 보궐선거에 나갔던 바로 이 장면입니다.

시인은 새벽 어판장 바닥을 파닥파닥 치는 생선들을 육탁, 몸으로 때리는 목탁이라고 했지요. 살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그 비참한 순간을 '결코 치고 싶지 않은 생의 바닥' 이라고 했습니다.

이 대표는 바닥을 칠 대로 치고도 결국 영장 실질심사 법정에 서게 됐습니다. 약속한 대로 끝까지 당당하게 나가느니만 못했습니다. 게도 못 잡고, 게 담을 구럭도 다 잃은 채 인간 이재명의 민얼굴만 만천하에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9월 21일 앵커의 시선은 '이재명이 선택한 길'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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