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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신동욱 앵커의 시선] 이재명의 동아줄

등록 2023.09.27 23:23 / 수정 2023.09.27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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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한 마리가 집에 들어왔습니다. 파리채, 파리약에 파리지옥도 소용없습니다. 집은 쑥대밭이 되고, 파리는 날아갑니다. 하지만 냄새를 찾아 돌아오기 마련이지요. 구더기 신세를 벗어난 파리가 '축복해 달라'고 합니다. '날개라는 선물도 받았구요. 그런 내가 다시금 왜, 구린내 나는 데 달라붙어 사는지 나도 모르겠네요'

순우리말 '억척'은 한자말 '악착(齷齪)'에서 나왔습니다. '몹시 모질고 끈덕지다'는 뜻은 같지만 '도량이 좁고 잔인하다'는 악착의 의미는 없지요. 이 시에서는 누가 더 악착같을까요. '한 여자가 전철 출입문 옆에 빌라 분양광고 전단지를 붙이고 가면, 또 한 여자는 뒤따라가며 붙인 전단지를 뗀다' 불교에서는 밧줄에 매달려 극락에 간 중생을 악착보살이라고 합니다.

이재명 대표는 스스로 '만독불침'의 경지라고 했습니다. 여배우 스캔들과 관련해 했던 말이지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습니다." 그는 당선 무효 형을 선고받은 백척간두에서도 대법원 무죄 판단을 받아 기사회생했습니다. 대장동 '50억 클럽'에 거론되는 대법관이 손을 들어줬던 판결이지요. 그리고 또 오늘 새벽, 구치소를 무사히 나섰습니다.

영장 판사는 증거인멸 염려가 적다는 이유의 하나로 '정당의 현직 대표' 라는 점을 들었습니다. 결국 이 대표가 대선 후 억척스럽게 당권까지 거머쥔 것이 갑옷 구실을 톡톡히 한 셈입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살고도 제대로 살아난 것이라고 하기 힘듭니다.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을, 체포동의안 표결 전날 걷어차고 부결을 요구한 게 돌이킬 수 없는 악수였습니다. 사즉생를 외치며 나선 단식이, 개인 이재명의 살 길을 도모하려는 방편이었음을 드러내고 말았으니까요. 그 순간 한 인간으로서 품성과, 정치 지도자로서 신뢰를 결정적으로 자해하고 말았습니다.

"구치소에 가도 대표직을 지켜 옥중 출마, 옥중 결재를 하라"는 이 영상에 '좋아요'를 누른 것 또한 적나라했지요. 우리는 영장 기각이냐 발부냐는 단판 승부에 목을 매곤 합니다. 하지만 구속은 수사의 한 수단이고 총체적으로 죄를 묻는 한 과정일 뿐이지요. 도주와 증거 인멸을 막는 제도이기도 하고요. 구속됐다고 유죄가 아니듯, 기각됐다고 무죄는 아닙니다.

'백척간두 진일보' 라는 불교 화두가 있습니다. 자신을 내던져야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가르침입니다. 이 대표는 벼랑 끝에서 동아줄을 붙잡았습니다. 하지만 한 뼘쯤 잠시 숨을 돌리는 것일 뿐입니다. 스스로를 다스려 삼가지 않는다면 그 동아줄이 썩은 동아줄이 될지 모릅니다. '파리가 소꼬리를 붙잡고 천리를 간다' 한들, 그건 파리 뜻대로 가는 길이 아니듯 말입니다. 이재명의 위기는 끝이 아니라 이제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9월 27일 앵커의 시선은 '이재명의 동아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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