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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신동욱 앵커의 시선] 추석 달만 같아라

등록 2023.09.28 21:49 / 수정 2023.09.28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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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은 또 그렇게 고와 동네는 밤새껏 매양 황혼 녘이었고… 마당 가장자리에는 가지런한 기러기 떼 그림자가, 달빛을 한 움큼씩 훔치며 달아나고 있었다.' 소설가 이문구의 고향 이야기 '관촌수필'을 읽자면, 구수한 해학에 웃음을 터뜨리다 울음을 삼키며 끝납니다.

그중에 '빈 산이 달을 토한다'는 '공산토월(空山吐月)'에는 숨이 멎을 듯한 보름달 풍광이 펼쳐지지요. 거기 그 달은 어머니입니다. '구름 한 조각 묻어 있지 않은 하늘에는 오직 어머니 마음 같은 달덩이만 가득' 합니다. 소설가 이호철은 인민군에 징집돼 울진에서 국군과 전투를 벌였던 열아홉 살 추석 밤을 잊지 못했습니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 아래서 온통 천지가 지듯이 총성이 낭자하다가도 한순간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멈추고 양군이 쏘아 올리는 신호탄이 아름다웠다.' 시선 이백이 세상을 떠돌던 서른한 살 가을 달밤에 뒤척입니다. '침상 앞에 달빛이 밝다 서리라도 내린 듯. 고개를 드니 달이 산에 걸리고 눈에 삼삼한 고향... 나는 그만 고개를 숙인다'

달은 하나지만 온 세상 모든 이를 비추는 그리움입니다. 그 그리움의 끝에는 늘 어머니의 얼굴이 있지요. 시인이 달 떠오를 때까지 추녀 밑에 주저앉아 생각합니다. '그때는 어머니도 계셨는데, 어머니래도 젊고 이쁜 어머니가 계셨는데…'

머리에 서리가 내린 시인도 추석 달을 보며 먼저 가신 부모님을 그리워합니다. '반백의 머리를 쓰다듬는 부드러운 달빛의 손길, 모든 것을 용서하는 넉넉한 얼굴, 아, 추석이구나.' 추석 전야가 깊어갑니다.

고속도로를 메웠던 행렬도 이제는 잦아들었습니다. 돌아갈 고향이 있고, 그립고 고마운 부모님이 계신 것만으로도 행복한 밤입니다. 어머니 넓은 품이 따스하고 그립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연어가 강물을 거스르듯 본능적으로 그 품으로 파고 들고야 말지요.

'바다가 바다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받아주기 때문이다. '괜찮다', 그 말 한마디로 어머닌 바다가 되었다.' 비록 호주머니는 가벼워도 고향의 추석은 돈이 두둑한 지갑처럼 넉넉합니다. '나의 사투리에서 흙냄새가 나던 날들의 추석 무렵, 시내버스 운전사의 어깨가 넉넉했다. 구멍가게의 할머니 얼굴이 사과처럼 밝았다.'

지난 여름 모진 홍수, 더위 속에서도 추석 달은 '솔 향내 푸르게 밴 송편'으로 떠올랐습니다. '나의 추석 달은 백동전 같이 눈부신 이마를 번쩍이며 밤 깊도록 그리운 얘기를 나누고 싶다.'

가족이 모여 지금쯤 무릎을 맞대고 도란도란 이야기 꽃 피우는 분들이 많겠지요. 이문구의 글을 빌리자면 '천지에 생긴다고 생긴 것이란, 온통 영글고 농익어 가는 밤' 입니다.

9월 28일 앵커의 시선은 '추석 달만 같아라'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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