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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신동욱 앵커의 시선] 고맙습니다

등록 2023.09.29 21:51 / 수정 2023.09.29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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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말했지요. '가을은 여름이 타고 남은 것'이라고. 그 황량한 가을 산비탈을 신령스럽게 밝히는 나무가 있습니다. 계절이 깊어갈수록 수피가 은빛을 발하는 가을 숲의 정령(精靈), 자작나무입니다.

강원도 태백에서는, 탄광을 개발하느라 망가진 산림을 되살리려고 30년 전부터 꾸준히 자작나무를 심었답니다. 그곳 4대 명품 자작나무숲에 '권춘섭 집 앞 정류장' 이라는 숲이 있습니다. 숲 아래 사는 분 이름을 딴 버스정류장 이지요.

사연은 그의 어머니가 암에 걸린 25년 전으로 거슬러갑니다. 워낙 외진 곳이어서 병원에 다니려면 하염없이 길가에 서서 어쩌다 지나가는 버스를 붙잡아야 했습니다. 아버지가 하소연 또 하소연해 정류장이 생겼는데, 이름을 붙일 건물이 그 댁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권상철 집 앞' 정류장은 '권춘섭 집 앞' 정류장으로 대물림됐지요.

홀로 배추농사를 짓는 아드님도 어느덧 칠순이 넘었습니다. 따듯한 사연입니다만 한편으로는 사위어가는 우리네 고향의 쓸쓸한 풍경 한 자락입니다.

시인이 고향에 넘치던 황금빛 가을의 추억을 더듬습니다.

'내 고향 그곳에는 기름진 들녘이 있었다. 해마다 기쁨으로 오는 가을이 있었다.'

고달픈 삶에 치여 망향을 탄식하기도 합니다.

'내 마음의 고향은 대숲마을의 노오란 초가을 초가지붕에 있지 아니하고… 싸락눈 홀로 이마에 받으며 어둑한 신작로 길로 나섰을 때 끝났다.'

'우리 가을은 냉랭한 한기로부터 기어드는 땅거미' 라고 분단과 실향의 가을을 노래한 시도 있습니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그 산허리쯤 가위눌린 골짜기. 앓아누우신 지도 40년이 넘은 어머니.'

철학자 신일철은 또 '고향은 우리 실향민의 영원한 종교' 라고 했지요. 추석이면 더 깊어지는 아픔은 그러나, 실향민에 그치지 않습니다.

세대가 바뀌기를 거듭하고 시골이 퇴락하면서 고향이 타향 되고 타향이 고향 되는 '신 실향민'이 늘어갑니다. 그래서 더욱 굳은살이 옹이로 박히도록 고향을 지키시는 부모님의 거친 손을 생각합니다.

시인이 새벽 길을 걸어 고향 집에 들어섭니다. 아버지는 수수빗자루를 만들고, 어머니는 헌옷을 깁고 계십니다.

'그이들의 눈빛, 손길로 아침이 오고 우리들은 살아갈 뿐… 아버님 어머님 속으로 부를 뿐 목이 메이는구나.'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망향 실향의 시대에, 오늘같이 좋은 날 자식들이 돌아와 안기게 해주시니 이 눈부신 가을처럼이나 고맙습니다.

'또 가을이 수북하게 왔습니다. 이래도 되는지요. 빛 부시어 과분한 거 아닌지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나의 복입니다.'

9월 29일 앵커의 시선은 '고맙습니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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