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호 앵커칼럼] 검증과 마타도어

윤정호 기자 | 2016.12.26 20:50

2012년 대선 막바지에 박근혜 후보가 기자회견을 합니다.

박근혜 /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2012년 12월 14일)
"마타도어를 청산하지 못하면 대한민국 정치는 또 다시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박근혜 /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2012년 12월 13일)
"(야당이) 매일 흑색선전과 마타도어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마타도어는 '근거 없는 사실로 모략하는 흑색선전'을 뜻합니다. 스페인 투우경기의 우두머리 투우사 마타도르에서 나온 말이랍니다. 마타도르는 조수들이 작살과 창을 찔러 황소의 부아를 돋운 뒤 등장합니다. 빨간 망토로 소를 홀려 망토에 감춘 마지막 칼을 꽂습니다. 그렇게 소를 속여 가하는 치명적 공격이 흑색선전 같다는 겁니다. 그런데 발음부터가 스페인어 마타도르도, 영어 매터도어도 아닌 국적불명입니다. 흑색선전이라는 뜻은 영어사전 어디에도 없습니다.

한국에서만 쓰는 이 정체불명 용어가 1960년대부터 선거철만 되면 등장합니다. 그럴싸한 마타도어 한 방이면, 선거판을 뒤집을 수 있어섭니다. 마타도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선거판, 특히 대선전이 시작된다는 얘기입니다.

반기문 총장이 23만 달러를 받았다는 보도를 두고, 새누리당 탈당파에서 '팩트가 없는 마타도어'라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반 총장이 합류할 가능성이 가장 큰 정파입니다. 

반면, 민주당은 날 선 반응입니다. "몸을 불사르기 전에 성완종 박연차 관련 의혹을 해명해야." 반 총장은 문재인 전 대표와 여론조사 1~2위를 다툽니다.

반기문 연대론에 뜸을 들이는 국민의당은 유보적입니다. "사실관계가 좀 더 확실해지면 당 입장을 내겠다" 한 사안을 두고 각자 계산이 다릅니다.

대선후보를 검증하자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습니다. 특히 이번 대선 여론조사 1~4위 후보 가운데 세 사람은 제대로 된 검증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사실관계 확인을 할 새도 없이 선거가 먼저 끝날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아니고말고식 폭로가 더 기승을 부릴 듯합니다. 명확한 증거에 근거한 합리적 의심에서 검증이 출발해야하는데 말입니다.

북풍, 병풍 같은 바람은 다시 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투명하고 엄밀한 검증이 부족한 탓에 나라에 위기가 닥친 것도 잊지 말아야겠지요.

앵커칼럼, ‘검증과 마타도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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