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30만원짜리 책 사주세요"…엉터리 '희망도서'

송지욱 기자 | 2017.01.24 20:29

[앵커]
이 책 한 번 보십시요. 제목은 일단 저희가 가렸는데, 얼마짜리로 보이십니까. 빅데이터와 클라우드 같은 최신 IT 주제를 담았다지만, 손쉽게 검색할 수 있는 내용을 짜깁기한 수준입니다. 그런데 이게 30만원이랍니다. 이런 책이 전국 도서관 곳곳에 비치돼있는데, 도서관 '희망도서' 제도를 악용한 일종의 사기입니다.

송지욱 기자의 '현장 추적'입니다. 

 

[리포트]
서울의 한 대학 도서관. 연구보고서 같은 책자가 곳곳에서 눈에 띄는데, 자세히 보니 내용은 엉망입니다.

공공기관 연구 보고서를 그대로 베낀 문장이 여기저기서 보이고 그나마 출처 표기도 없습니다. 300여 쪽 정도인 책은 조악한 수준인데도 가격이 30만원입니다. 

다른 책과 한 번 비교해보겠습니다. 두꺼운 겉장에 1400여쪽이 천연색인 이 외국 서적은 가격이 14만원입니다. 그런데 30만 원이라는 이 책은 얇은 겉장에 300여쪽 모두 흑백입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가격댑니다. 

해당 출판사 책을 더 찾아보니 모두 22권이 나왔습니다. 빅데이터와 클라우드 같은 최신 IT 주제를 담았지만 대부분 짜깁기 수준입니다.

윤세민 / 한국출판학회 회장
"도저히 (30만원짜리가) 아닙니다. 이건 사기고 이건 일반 정부 홈페이지나 각 부처 홈페이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콘텐츠인데 짜깁기용 거짓도서기 때문에…."

어떻게 이런 책이 대학 도서관에 비치된 걸까. 상당수는 아르바이트생이 '희망도서'로 특정 출판사 서적을 신청해 도서관이 구매하게 한 겁니다.

출판사가 업체에 의뢰해 희망도서 알바를 모집하고, 특정 도서가 도서관에 납품되면 책 가격의 10%를 지급하는 방식입니다.

인터넷에 뜬 희망도서 알바 광고를 보고 신청 메일을 보냈더니, 도서 신청 방법부터 의심을 피하는 법까지 상세히 설명된 답신이 바로 날아옵니다.

신청할 책들은 한 권에 수십 만원에서 100만원 가까운 것도 있습니다.  

이 같은 책을 출판하고 납품해온 업체를 찾아가 봤습니다. 출판사 주소지는 가정집이고, 이웃들은 출판사인지도 모릅니다.

동네주민
"그런 소리 없었는데 출판사는 못 본 거 같은데…."

대학 도서관 상당수가 엉터리 업체 서적을 등록금으로 구매해온 겁니다. 더욱이 이런 책들은 국공립 도서관에까지 버젓이 납본됐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 서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서가 한쪽만 봐도 비슷한 책들이 여럿 꽂혀있습니다. 책들의 가격을 봤더니 약속이나 한 듯 30만원대로 적혀있습니다.

이들 출판사는 모든 출판 기록물을 보관해야하는 국가 납본 도서관 기능을 악용해 불량책들을 납품하고 이득을 챙겨왔습니다.

출판업계 관계자
"자료들 마스터(제본) 떠 가지고 고가로 해 가지고 도서관 납품 넣고 그런 일 많이 있었죠. 책 같지도 않은 것을 무조건 갖다가 자료라고 해서…."

도서관들이 희망도서 심의를 강화하면 제도 악용을 막을 수 있지만, 대응 현실은 부실한 상황입니다.

국립중앙도서관 관계자
"악용하는 사례들이 있기는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소송을 준비하거나 변호사 선임했단 얘기를 들었거든요."

지난해 8월부턴 종이에 인쇄할 필요가 없는 전자책 등 온라인 자료까지 국립 도서관 납본이 시작됐습니다.

이 때문에 출판업계에선 엉터리 희망도서 신청과 납본이 더욱 활개칠 거란 우려가 나옵니다.

TV조선 송지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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