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욱 앵커의 시선] 실향의 설
신동욱 기자 | 2018.02.16 21:45
한국인의 맑은 영혼을 영롱한 토속어로 노래했던 시인 백석이 개마고원 서쪽 고원선 종점, 부전호반역에 갔습니다. 사방은 고요하고, 호수에서 칠성고기 첨벙대는 소리만 들려옵니다. 사람들은 하염없이 기차를 기다리며 뜨거운 귀리 차를 마십니다.
곽재구 시인은 그 귀리 차를 꿈꿨습니다. 나라가 하나 되면 개마고원 가는 기차표부터 끊겠다고 맘먹었습니다. 부전호반역을 그리며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로 시작하는 명시 '사평역에서'를 썼습니다.
젊어서부터 개마고원을 꿈꾸는 또 한 사람이 문재인 대통령입니다. 집에 개마고원 사진을 붙여놓고 고원에서 한 두 달 지내기를 소망했지요. 문 대통령은 고원선 시발역인 함흥 출신 실향민의 아들입니다. 2004년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때 어머니를 모시고 북한의 막내이모를 뵙기도 했지요.
문 대통령은 북한 김여정을 만났을 때 개마고원과 이모 상봉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하지만 북측은 이모의 안부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고 합니다.
오늘 설날 아침에도 임진각 망배단에 실향민이 모여들었습니다. 북을 향해 돗자리 깔고 차례를 모셨습니다. 하지만 고향과 혈육을 찾아가는 꿈은 갈수록 사위어만 갑니다.
그간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가 13만명을 넘습니다만, 지난해 또다시 3천800명이 세상을 떠 5만8천명만 남았다는 소식입니다. 구순 노모를 모시고 함흥에 가보고 싶다는 문 대통령의 꿈도 설이 거듭될수록 옅어져 갑니다.
"눈물 어린 툇마루에 손 흔들던 어머니… 길 떠나는 우리 아들 조심하거라. 그 소리 아득하니 벌써 칠십년. 보고 싶고 보고 싶은 우리 엄마여!" - 송해가 부르는 '유랑 청춘'
황해도 사람 송해 영감님은 아흔한 살 되도록, 근 70년 전 생이별한 어머니 얘기만 나오면 펑펑 웁니다. 실향과 이산의 상처엔 살아 생전 딱지가 앉지 않습니다. 설이면 더욱 가슴이 시리고 아릴 실향민을 생각합니다.
2월 16일 설날 앵커의 시선은 '실향의 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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