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Talk] 화성 8차 복역자 윤 씨에게…"기자로서 죄송합니다"
주원진 기자 | 2019.10.30 13:19
"30년 전에 언론사들은 뭐했습니까? 대답 한 번 해보세요? 여기 계신 분들!" 화성 8차 사건으로 20년 간 복역한 윤 모 씨가 처음으로 포토라인에 섰습니다. 현장에 기자들은 모두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경찰의 강압수사에 대한 말을 기대했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 이였습니다. '송곳같이' 가슴을 찔렀습니다. 이 사건을 맡으면서 매번 고민했던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일단 윤 씨에게 "기자로서 죄송합니다." 라고 답부터 드리겠습니다.
경찰이 이춘재를 못 잡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지역 간의 칸막입니다. 수원 남부경찰서 관할이라고 청주 상당경찰서 관할이라고 연쇄 살인에 끼어 넣지 않다 결국 '그놈'을 놓쳤습니다. 언론도 마찬가지였던 듯합니다. 이번 화성 사건의 가장 큰 취재원 중 하나는 당시 신문입니다. 30년 전 현장에 없었던 기자들에게는 매우 큰 취재원입니다.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던 때 사망현장 및 피해자 집 주소 인적사항 심지어 사진까지 구할 수 있습니다. 윤 씨에 대한 기사도 매우 많습니다. 심지어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 '외운 듯한' 범행동기도 말합니다. 1심에서 그가 무기징역을 선고 받는 것도 "과학의 수사의 쾌거"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다수 나왔습니다.
그러다 문제가 생깁니다. 2심부터 윤 씨의 기사는 어디를 찾아봐도 나오지 않습니다. 윤 씨는 2심부터 "강요에 의한 자백이다. 나는 범인이 아니다" 주장합니다. 물론 당시 윤 씨에 대해 악마시하는 사회 분위기에 그 말에 귀를 기울여 줄 사람은 적었을 겁니다. 그래도 윤 씨가 진술을 바꿨다면 최소한 "화성 살인 사건 범인 반성하지 않고 2심부터 범행 부인" 식의 비판 기사라도 나왔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기사가 없습니다. 언론사는 보통 기자 별로 자신이 취재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지역 간 칸막이가 있습니다. 보통 경기도를 담당하는 기자들은 경기도 경찰과 수원에 법원 등을 담당합니다. 윤 씨는 1심 재판을 수원에서 받아서 해당 기자들이 재판까지 다 챙겼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윤 씨는 2심부터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을 받습니다. 지역을 옮겨 간 것입니다. 언론사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사건 담당이 아닌 '법조 기자단'에서 담당합니다. 윤 씨 사건은 결국 수원에서 서울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미아가 되 버린 듯합니다.
30년 전 윤 씨를 찍은 뉴스 영상을 보면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습니다. 행색도 초라하고 말도 어눌합니다. 당시 판결문에는 윤 씨가 "뒷담을 훌쩍 넘었다"고 나옵니다. 가족이 다 있는 집에서 몰래 피해자 박 모 양이 있던 방에 잠입도 합니다. 입구를 막고 있던 책상까지 훌쩍 넘어 들어가 소리 소문 없이 박 양을 성폭행 합니다. 이후 박 양을 살해하고 역시 누구 눈에도 뛰지 않고 도망갑니다. 윤 씨의 범행을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치 '쾌걸 조로' 같습니다. 당시 기자들 모두 윤 씨의 행색을 눈으로 봤을 것입니다. 경찰의 범행 설명도 법원 판결문도 봤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기자도 왜 의심하지 못했을까요? 최소한 법조 기자단에 "윤 씨가 이상하다. 2심 재판도 혹시 모르니 살짝만 지켜 봐 달라" 전한 기자가 왜 한명도 없었을까요. 아쉽습니다.
윤 씨가 설령 화성 8차 사건의 진범일수 있습니다. 다만 적어도 윤 씨가 "무기징역을 선고 받을 만큼 확실한 범인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윤 씨를 유죄로 선고한 근거는 자백과 체모검사 오직 2개뿐입니다. 이 중 자백은 이미 30년 전에 번복했습니다. 우리가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지 못해 당시는 잊혔지만요. 자백 외에 유일한 증거였던 체모검사는 진위 여부가 의심 받는 상황입니다. 형사사법 체계에서 1%의 무죄 가능성만 있어도 유죄 선고에 신중해야합니다. 1000명의 범인을 잡는 것 보다 1명의 무고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됩니다. 30년 전 우리는 사회적 약자를 짓밟았습니다. 경찰은 진급에 눈이 멀어 강압으로 윤 씨를 짓밟았습니다. 검찰은 인권 보호 기관의 본분을 망각하고 윤 씨를 짓밟았습니다. 사법부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무시한 채 윤 씨를 짓밟았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감시해야할 언론은 '무관심'으로 윤 씨를 짓밟았습니다. "기자로서 죄송합니다." 지금이라도 그의 명예를 되찾아주고자 합니다. / 주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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