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욱 앵커의 시선] 국민이 봉입니까?
신동욱 기자 | 2020.03.19 21:47
시인이 고향 가는 시골버스를 탔는데 어느 할머니가 기사에게 "이게 막차냐"고 묻습니다. 기사가 "마지막 버스, 그러니까 영구 버스가 한 대 더 있다"고 농을 던지자 곧바로 할머니의 반격이 날아듭니다. "그래 자네가 먼저 타보고 귀뜸해줘, 그 버스를 영구적으로 끌든지…" 기사가 "아이고 제가 졌어요" 하고 항복하지만 때는 늦었습니다. "화투판이든 윷판이든 지면 '죽었다'고 하는겨, 자네가 먼저 죽어." 기사가 "다음엔 승복 입고 오겠다"고 저항해보지만 할머니는 결정타를 날립니다. "예쁘게 하고 와, 자네가 내 마지막 남자니까…" 삶의 끝자락에 다다른 할머니의 질펀한 해학이 묘하게 서글픈 여운을 남깁니다. 투전판 개들은 사력을 다해 싸우지만 묘하게도 서로 급소만은 물지 않는다고 합니다. 시인은 혼란스러워합니다.
"개싸움에 무슨 룰이 있고 생명 존엄의 틀이 있단 말인가."
비례용 위성정당을 둘러싼 정치판의 진흙탕 싸움, 이전투구가 갈수록 태산, 점입가경입니다. 민주당은 조국 지지세력이 주축이 된 급조 정당과 함께 비례당을 출범시켰습니다. 당초 제휴하기로 했던 곳과 결별하고 새 파트너를 잡은 것은 위성정당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많습니다. 이럴바에는 차라리 스스로 비례위성정당을 만드는 것이 더 떳떳하다는 얘기가 진영 안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명분은 만들면 된다"던 민주당이지만 어떤 명분도 통하지 않을 지경으로 내닫고 있습니다. "비난은 잠시, 책임은 4년"이라던 이낙연 선대위원장은 "현재 전개가 매우 민망하다"고 남의 애기처럼 말했습니다. 민망한 사람은 지켜보는 국민입니다.
미래통합당이 위성정당 비례명단 문제로 삐걱대는 것도 볼썽 사납습니다. 지금까지 만들었던 명단을 폐기하고 이제 또 새로운 명단을 내세우는 것도 국민에게는 예의가 아닙니다 이 모두가 선거법 강행 때 예고됐던 일입니다만 대한민국 정치 현실이 시골버스 할머니의 농담처럼 우습고도 서글픕니다. 그보다 더, 화나고 혐오스럽습니다.
이전투구는 "옳지 못한 방법으로 욕망을 채우려는 추잡한 싸움"을 뜻합니다. 그래서 속담에 "개싸움엔 모래가 제일" 이라고 했습니다. 뜯어말리고 물을 끼얹어도 듣지 않을 땐 모래를 퍼붓는 수밖에 없다는 뜻이지요. 정치를 투전판보다 더 못한 곳으로 만들어 놓은 책임, 다가오는 총선에서 국민들은 누구에게 모래를 끼얹을 지 지켜볼 일입니다. 3월 19일 앵커의 시선은 '국민이 봉입니까?'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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