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욱 앵커의 시선] 정의가 이런 것입니까

신동욱 기자 | 2020.06.24 21:47

시인이 아침 신문에서 '오늘의 운세'를 봅니다. "칼슘을 많이 섭취하고 몸을 따뜻이" 하랍니다. 그래서 우유도 두 잔, 멸치볶음도 한 접시 비웠습니다. 내복 입고 방 따뜻하게 덥혔습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묻지 않았습니다. 운명이니까.

'운수소관'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일이 능력이나 노력에 상관없이 운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지요.

하지만 수많은 청춘들은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고진감래'를 믿습니다.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고시원에서 쪽잠 자는 젊음들을 시인이 응원합니다.

"합격해도 삼천 원, 떨어져도 삼천 원. 컵밥에 공짜는 없다. 절망은 팔지 않는다… 흙수저 탓하지 말고 금수저 욕하지 않는, 청춘엔 깨지고 터질 실패의 자유가 있다…"

"(컵밥) 맛있네요…"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후보 때 노량진 학원가에 찾아가 힘내라고 했습니다.

"저도 옛날 사법시험 준비를 했었는데, 그때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청년들에게 고진감래 대신 운수소관의 좌절과 체념, 분노를 안겨준 일이 벌어졌습니다.

최고 공기업이라는 인천공항공사가 천9백명에 이르는 보안검색원을 정규직으로 직고용하기로 했습니다. 당장 청와대 국민청원을 비롯해 젊은이들의 자조 섞인 하소연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운 좋으면 정규직 되는데 공부는 해서 뭐하느냐"라거나 "노력하는 사람을 역차별하는 일자리 로또"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저희 역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건 결코 아닙니다. 모든 직장인이 잘릴 걱정 없이 일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서 '비정규직 제로'라는 정치적 구호에 누구나 혹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외면한 '비정규직 제로'는 어떻게든 탈이 나기 마련입니다. 이미 여러 공기업에서 인건비 부담이 가중되고 고용세습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정규직 전환이 누군가의 공정한 기회를 빼앗는 것이어서는 결코 안 될 겁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묻고 있습니다.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과연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이냐고. 그렇다면 결과가 정의로울 수 있겠느냐고 말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습니다. 행운은 눈이 멀지 않아, 노력하는 사람에게 찾아간다는 격언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청년들에게는 모두 공허한 말이 아닐는지 생각해봅니다.

6월 24일 앵커의 시선은 '정의가 이런 것입니까'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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