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Talk] "피해호소인" 논의 당시 카톡방 대화에서 드러난 '민주 女의원 민낯'

백대우 기자 | 2021.01.02 10:41

TV조선이 입수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여성 국회의원들이 지난해 7월14일 '민주당 女의원 단체 SNS방(이하 카톡방)'에서 나눈 대화 전문을 보니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과 관련, 피해자 분에 대한 사과와 진상 규명 등을 촉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단체 입장문' 의견 수렴 과정이었는데요. 못 볼 것을 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성' 타이틀로 빛을 더해온 분들이 적지 않은데, 비공개 카톡방에선 성추행 피해 여성을 '피해자'로 부르자는 결정도 못 내리고 사과에 인색함 마저 보이니 말입니다.

◆ 남인순, 피해호소인 표현 주도

박 전 시장의 장례 일정(5일장)이 마무리된 바로 다음 날인 지난해 7월14일 오후 3시35분쯤, 민주당 여성 의원 28명이 속한 단체 카톡방에 '피해호소여성'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입장문 초안'이 올라옵니다.

이른바 '박원순 사건'과 관련해 당시 민주당 여성의원들은 왜 침묵하느냐는 비판이 제기됐는데, 장례가 마무리됐으니 입장 표명을 더 미룰 수 없는 시점이었습니다.

초안이 올라오기가 무섭게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이자 '여성 단체 운동'을 20년 넘게 해왔던 재선의 정춘숙 의원이 "피해호소인에 대한 사과가 있어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고, 8분 뒤엔 "피해자라고 해도 될 것 같다"며 연이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러자 3분 뒤 당시 여성 몫 최고위원으로 당 지도부의 일원이기도 했던 3선의 남인순 의원이 "피해호소인 표현이 현재까지 정리된 워딩"이라고 했고, "(전날 이해찬) 당 대표 사과는 피해호소인에 대한 사과가 아니라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것에 대한 것"이라며 정 의원의 의견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2분 뒤, 지난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피해자였던 권인숙 의원 역시 "피해호소인이 좀 거슬린다"고 지적했는데, 남 의원은 "(안희정 미투 사건이 터졌던) 2018년 당내 젠더폭력 활동 당시 법적으로 정리된 사건이 아닌 경우 피해호소인으로 정리했다"고 재차 반박했습니다.

같은 3선이지만 남 의원 보다 3살 위인 전혜숙 의원이 "피해여성으로 하자"고 올리자, 남 의원은 "그동안 당은 피해호소인의 진술을 듣고 가해 지목인을 조사한 후, 외부인사로 구성된 조정위원 심의 후 당에 권고하면 최종 판단을 해왔다"며 보다 길게 설명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해 지목인'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습니다.

그로부터 19분 뒤, 최초의 여성 국회부의장인 4선의 김상희 의원이 '입장문 수정안'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도 피해호소인 표현이 남아 있었습니다.

수정안이 올라온 즉시 남 의원은 "네"라고 답했는데, 여검사 출신인 재선의 백혜련 의원이 "여성의원들은 피해자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일부러라도"라며 반대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이에 남 의원이 또 다시 "진상조사에 맡깁시다. 주변인 조사를 하다보면 실체적 진실에 접근해 나갈 수 있어요"라고 하자, 백 의원은 "당은 피해호소인으로 하더라도 여성의원들까지 그렇게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사실관계를 떠나 최소한의 연대, 지지를 보여주는 느낌이 나야한다"고 재차 반대했습니다.

그러자 김상희 부의장이 "일반적으로 호소인으로 통일돼가고 있으니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다시 진화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김 부의장의 "일반적으로 호소인으로 통일돼 가고 있으니"라는 표현은 사실과 달랐습니다.

재선 이상의 의원들이 올리는 반대 의견을 사실상 남 의원이 온몸으로 막아내던 상황이었습니다.

◆ 고민정 "한 쪽 주장만 들은 상황"…피해호소인에 대한 사과 입장문도 반대 취지

잠시 뒤 고민정 의원은 입장문 발표 자체를 반대하는 듯한 뉘앙스의 글을 올렸습니다.

"아직 정확한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피해자로 규정하는 것은 이른감이 있다는 의견입니다. 그리고 한 쪽의 주장만을 들은 상황에서 이러한 입장문을 낸다는 것은 그쪽의 주장을 모두 진실로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일텐데, 그럴만한 정황 증거 혹은 확인이 다 끝난 건지 궁금합니다."

3분 뒤, 환경부장관 내정자인 3선의 한정애 의원이 "피해자 또는 피해 여성으로 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경찰에서 포렌식을 통해 확인 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며 용어 수정론에 다시 불을 지폈습니다.

이에 직전 여성가족부장관을 지낸 3선의 진선미 의원은 "입장문 만으로 어느 한 쪽의 주장을 모두 진실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고 의원 발언엔 제동을 걸었지만, "용어는 당에서 취해왔던 일관된 입장에서 우리가 조사 내용을 접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피해호소인으로 써도 무방하다"고 했습니다. '카톡방 대화' 10달 전까지 진 의원은 현직 여가부장관이었습니다.

◆ 일부 초선의원들 "피해자" 표현 주장

재선 이상의 의원들만 의견을 개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부 초선 의원들도 "피해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가장 강하게 주장한 건 변호사 출신의 이소영 의원입니다.

이 의원은 "저희까지 피해여성과 거리 두는 단어를 선택하게 되면, 재발방지 대책 등 실체적인 사항보다 용어의 문제가 더 주목되면서 결과적으로 성명을 안 내는 것보다 못한 평가를 받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반응이 없자, 15분 뒤에는 "우리당의 확고한 지지층인 20~30대 여성들이 이번에 많이 돌아서지 않을까 우려되는데, 조금은 전향적인 고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재차 건의했습니다.

강선우 당 대변인, 홍정민 당 원내대변인, 임오경 의원 등도 피해자로 쓰자는 입장을 올렸습니다.

◆ 김상희, 남인순 입장 적극 반영해 피해호소인으로 결론

오후 5시28분, 김상희 부의장은 "그러면 피해여성으로 바꿀까요? 남인순 의원님, 진선미 의원님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의원은 답이 없었고, 그 사이 정춘숙-백혜련-전혜숙 의원이 재차 피해자로 표현하자는 의견을 올렸습니다. 전 의원은 "피해 여성으로 하자는 의견이 많으네요"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그 즈음 양향자 의원만 "저는 피해호소인, 피해호소여성 그대로 했으면 합니다"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양 의원은 그로부터 1달 여 뒤, 민주당의 여성몫 최고위원 자리에 오릅니다.)

시간이 잠시 흐른 뒤 김 부의장은 "여가부는 고소인, 여성단체협의회는 피해호소인, 여자변호사회는 피해자다. 의견이 분분해 제가 정했다. 대체로 피해호소인으로 통칭돼가는 상황이고 실제, 객관적 용어로 볼 수 있어 피해호소여성으로 하겠다. 양해바란다"고 말하며 사실상 논의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 남인순, '박원순 사건' 실체적 진실 몰랐을까?

검찰은 '카톡방 대화' 5개월 여 뒤인 지난해 12월30일, 성추행 피소 정황을 박 전 시장 측에 전달한 사람으로 남 의원을 지목했습니다.

검찰에 따르면 남 의원은 지난해 7월8일 오전, 자신의 보좌관을 지낸 임순영 서울시 젠더 특보에게 "박 시장 관련 불미스러운 얘기가 돈다"는 취지로 알렸고, 임 특보는 5시간 뒤 박 전 시장과 독대했습니다.

박 전 시장은 처음엔 관련 의혹을 부인(그런 것 없다)하다 결국 고백(문제될 소지가 있다) 했는데, 정공법(공개되면 시장직을 던지고 대응)을 택하려다 끝내 포기(이 파고는 내가 넘기 힘들 것 같다. 이 모든 걸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했습니다.

임 특보는 박 전 시장의 '부인->고백->대응->포기'라는 일련의 심경 변화 과정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지켜봤고, 박 전 시장과 당시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눴던 인물로 꼽힙니다.

남 의원이 임 특보에게 관련 정황을 알렸던 건 '카톡방 대화' 엿새 전입니다. 그 엿새 사이에 박 전 시장은 숨진 채 발견됐고, 장례 절차까지 마무리 됐습니다. 그리곤 '카톡방 대화'가 이뤘습니다.

◆ 민주당, 지금은 어떤가?

정부는 지난해 처음으로 '사라지는 성폭력, 살아나는 인권존중!'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11월25일부터 12월1일까지 일주일 동안을 '제1회 여성폭력 추방 주간'으로 지정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민주당 이낙연 대표 명의의 메시지는 없었습니다. 정부 주도 인권 관련 행사에, 그것도 첫 해에, 집권 여당 대표의 메시지가 없어서 의아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경기지사의 메시지는 있었습니다.)

당내 여성 의원들이 한 번 쯤은 건의를 해봄직 한데, 그것도 민주당 소속 지자체장들(안희정-박원순-오거돈)의 성 관련 사건이 연이어 터진 상황에서 별다른 입장 발표가 없었던 것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남 의원은 지난 7월 박 전 시장 측에 피소 사실을 먼저 알렸다는 의혹이 일었을 당시엔 "몰랐다"고 반박했는데, 검찰의 수사발표 이후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남 의원의 침묵이 길어지는 가운데 민주당 역시 "팩트 확인이 더 필요하다"며 함께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2021년 신축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 백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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