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Talk] 정치인 안철수,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이태희 기자 | 2021.04.20 13:52

"어떤 일을 선택할 때는 과거를 잊어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에 아무리 커다란 성공을 하였든 혹은 치명적인 실패를 하였든 간에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항상 현실에 중심을 두고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김영사, 2004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CEO 시절' 자서전에 언급한 삶의 교훈이다. '과거'보다 '현실'에 중심을 두고 살자는 말이다. 그런데 정치적 입지가 좁아져 조급해진 안 대표는 최근 '현실'을 부인하기 시작했다. '과거'에 비해 줄어든 영향력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뱉었던 말을 번복하는 상황도 반복되고 있다.

◆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습니다" 라더니
안 대표는 지난해 12월 20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수십 명 기자들이 국회 소통관에 몰렸다. 회견문 낭독이 끝나자 곧바로 '대선 출마를 접은 것이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PC를 바라보던 안 대표가 고개를 치켜들고 눈을 부릅 떴다. 안 대표는 "대선을 포기하고 시장 출마 결심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안 대표는 지난해까지 차기 대선에 발걸음을 맞춰 걸어왔다. 서울시장 출마선언 직전 언론 인터뷰들에서도 "서울시장 선거는 절대 안 나간다"고 했다.

하지만 3%대의 대선후보 지지율과 의석 수 3석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말 뒤집기' 논란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라는 '승부수'를 던진 셈이었다. 존재감이 흐릿해진 상황에서 서울시장에 당선될 경우 다시 유력 대선 후보로 부상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다.

그랬던 안 대표가 최근 다시 또 한 번 말을 뒤집었다. 안 대표 최측근인 국민의당 이태규 사무총장은 지난 19일 라디오에 출연해 "야권 대선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안 대표가 빠진다면 흥행이 별로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넉 달 전 '대선 불출마 선언'을 번복하는 발언이다.

이 사무총장이 '개인 의견'이라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넉 달 전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며, 부릅 떴던 안 대표 눈빛이 떠올랐다.

◆ 윤석열에 빼앗긴 '중도' 표심
'대선 후보 안철수'에 대한 최근 여론은 냉랭하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범야권 대선주자 1위로 떠오른 이후 안 대표 지지율은 줄곧 한 자릿수를 맴돌았다.

이런 현상에 대해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윤 전 총장의 지지층이 안 대표 지지층과 겹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안 대표는 국민의당 창당 이후 제3지대의 '중도' 가치를 특별히 강조해왔다. 안철수에게 '중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수식어였다. 안 대표를 유력 대권주자로 끌어올리는 데도 중도층의 지지가 주효했다. 하지만 이제 중도는 안 대표를 지지하지 않는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40%가 넘는 중도 성향 유권자가 윤 전 총장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 대표는 지난달 22일 보수 유튜브에 출연해 '총선 부정선거'를 주제로 토론했다. '총선이 부정선거가 맞느냐'는 사회자 질문에, 안 대표는 "결정적 증거는 선관위와 정부가 갖고 있다. 조사해야 한다"고 답했다. 국민의힘에서도 거리를 두고 있는 부정선거 의혹을 '중도'·'합리'·'새정치'를 강조해 온 안 대표가 받은 것이다. 조급해진 안 대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안 대표가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과거' 영광에만 매달려 있다면, 야권 통합은 이뤄질 수 없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합당의 가장 큰 과제는 안 대표의 대선 포기"라고 말했다. 안 대표가 대선 출마만 포기한다면, 합당에 장애물이 될 요소는 없다는 뜻이다. 안 대표는 분명 넉 달 전 대선을 포기했었는데 이상한 일이다.

서두에 "항상 현실에 중심을 두고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적었다는 안 대표의 저서 제목은 '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이다. 지금 정치인 안철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 이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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