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욱 앵커의 시선] 아니면 말고
신동욱 기자 | 2021.07.14 21:50
남극에 사는 아기 펭귄이 뉴질랜드 해변에 서서 어리둥절해합니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지?' 하는 표정입니다. 먹이를 쫓다 3천4백킬로미터를 잘못 헤엄쳐온 겁니다. 젖은 모래를 눈으로 알고 먹어댔다가 수술까지 받아야 했지요.
베네치아 국제마라톤 대회에서 선두 주자들이 경찰 에스코트를 받으며 달립니다. 그런데 철석같이 믿었던 경찰이 엉뚱한 길로 데리고 가는 바람에 되돌아오느라 우승권에서 탈락했습니다. 이럴 때 하는 우스갯말이 있지요. "이 길이 아닌가벼" 그런데 주최 측은 "대회에 아무 지장이 없다"고 버텼습니다.
산악인, 고 박영석씨가 '이 산이 아닌가벼' 경험담을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눈보라 속에 시샤팡마 봉에 섰다고 뿌듯해하는데, 옆에 더 높은 봉우리가 있더라"는 겁니다.
'올드 보이' 박찬욱 감독은 초등학생 딸이 '가훈을 적어오라'는 숙제를 받아오자 이렇게 써 보냈습니다. '아니면 말고…' "하고 싶은 걸 해보고, 안 되면 툭툭 털어버리자는 뜻"인데, 나랏일을 그렇게 했다간 나라가 거덜나겠지요.
정부 여당이 투기를 잡는다며 내걸었던 '재건축 조합원 2년 실거주' 의무를 1년 만에 없던 일로 했습니다. 재건축 수요가 가라앉을 거라고 장담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던 겁니다.
주인들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재건축 속도가 빨라지고 시세가 치솟았습니다. 세입자들이 무더기로 쫓겨나면서 전셋값도 뛰어올랐습니다. 낡은 아파트를 고치느라 생돈을 들인 집주인, 살아야 할 이유가 있었던 동네를 떠나 헤맨 세입자들은 기가 막힐 일입니다. 국민을 뭐로 알고 훈련시키느냐, 국정이 장난이냐고 울화통을 터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김현미 장관 시절 등록하라고 적극 장려했던 임대사업자를 부동산 적폐로 몰아 집을 팔라고 압박하는 건 또 뭔가요. 당연히 반발이 거세고, 민주당은 원점 재검토로 물러섰습니다. 세금을 사람 머릿수 기준으로 매기는 '종부세 상위 2퍼센트'도 세계에 유례가 없는데, 사사오입 논란까지 벌어지는 것도 황당합니다.
물이 뜨겁다고 찬물 틀고, 차갑다고 뜨거운 물 트는 '샤워실의 바보들'이 따로 없습니다. 순우리말 '복장'은 '가슴 한복판'을 가리킵니다. 그 국민의 복장을 이리 찧고 저리 긁어 터뜨려놓고는 미안해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습니다. 그러고는 '이 산이 아닌가벼' 돌아서는 정신승리에 할 말을 잃습니다.
7월 14일 앵커의 시선은 '아니면 말고'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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