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욱 앵커의 시선] 어느 자영업자의 죽음
신동욱 기자 | 2021.09.13 21:49
"난 싸구려 인생이 아니야! 윌리 로먼이라고!"
그는 성실하고 행복하게 살아온 자동차 세일즈맨 이었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반드시 성공한다고 믿었지요.
하지만 대공황이 닥치면서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그는 해고당한 뒤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34년이나 몸 바쳐 일했는데 이제 보험료 낼 돈도 없다고!"
그는 가족에게 사망 보험금을 물려주려고 마지막 길을 떠납니다. 시대를 초월해 소시민의 좌절을 파고든 걸작이지요.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에 빠져 40년 가까이 윌리 로먼을 연기한 배우가 전무송씨입니다. 그는 연극학도 시절 이 작품을 보러 갔던 때를 잊지 못합니다. 옆자리 중년 신사가 손수건을 꺼내 자꾸 눈물을 훔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무자비한 시대에도 우리는, 도처에서 윌리 로먼과 마주치고 있습니다. 남이 아니라 내 이웃들이고, 때로 누군가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20년 넘게 이름난 맥줏집을 꾸려온 50대 주인이 코로나의 폭풍우에 떠밀려 세상을 떴습니다.
그는 마지막 안식처였던 원룸을 빼, 가게 월세와 직원 월급을 줬다고 합니다.
온라인 추모 공간에는 그의 성실함과 인간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상륙한 뒤 지난 6월까지만 자영업과 소상공인 점포 45만 곳이 문을 닫았습니다. 하루 평균 천 개꼴입니다.
그러는 사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눈물을 쏟았겠습니까. 지금 위로와 격려가 절실한 사람들이 누구겠습니까.
"국민지원금이 힘든 시기를 건너고 있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위로와 격려가 되었으면 합니다"
재난지원금이 풀리자, 지급기준을 골품제에 빗댄 '계급표'가 나돌고, 못 받는 사람들의 반발이 쏟아졌습니다.
그러자 여당이 지급 대상을 90%까지 늘리겠다고 나섰습니다. 여기에 드는 비용은 3천억원 정도라고 합니다.
그래도 민원이 가라앉지 않으면 또 2퍼센트씩 늘릴 건지요? '국정이 무슨 장난이냐'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벼랑 끝에 선 자영업자들은 까다로운 지원 기준을 못 맞춰 아우성입니다. 그런데 국민 지원금 25만 원은 많은 경우, 있으면 좋고 없어도 괜찮은 돈이어서, 주는 명분이 희미해졌습니다. 지금 나라를 끌고 가는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서민들이 살아보려고 흘리는 피와 땀과 눈물을 알기나 하는 것이냐고, 그것조차도 혹시 표로 환산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아픔이 오죽했으면 자영업자 온라인 카페 이름이 이렇겠습니까.
'아프니까 사장이다' 9월 13일 앵커의 시선은 '어느 자영업자의 죽음'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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