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Talk] 미끼용 변장? 취재진 스토킹?…'올블랙 김혜경' 소동의 전말

최지원 기자 | 2021.11.16 16:02

15일 저녁, 한 언론사 사진 기사가 뜨자 민주당 출입 기자들 사이 탄성이 나왔다. 민주당 관계자들도 "이게 뭐냐"며 기사를 공유했다.

지난 9일 새벽 '낙상 사고'를 입었던 민주당 이재명 후보 부인 김혜경 씨가 엿새 만에 외출을 했다는 보도 때문이었다.

더팩트가 보도한 김 씨의 행색은 독특했다. 검은 모자에 커다란 선글라스, 얼굴 반 이상을 가린 검은 마스크, 검은 외투와 검은 바지 차림. 낙상 사고 이후부터 보도 시점까지 이 후보 자택 앞에서 소위 '뻗치기'를 했던 것으로 알려진 해당 언론은 "눈썹 위 열상 등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해당 기사 댓글엔 포착된 외관상으로 '영화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 같다', '은하철도 999의 철이 망토를 연상시킨다'는 반응들이 나왔다.

■ 이재명 측 "해당 인물은 수행원…취재진에 위압감 느껴 싸매"

해당 인물이 정말 김 씨가 맞는 지가 일단 관건이었다. 보도 3시간 뒤 연락이 닿은 이 후보 측 관계자는 "해당 인물은 김 씨가 아닌 수행원"이라고 답했다.

대선주자가 된 이후 붙은 경찰 경호 인력이 아니라, 원래부터 김 씨를 수행하던 사람 중 한 명이라는 것이다. '올블랙 여성'을 김 씨로 지목한 보도는 오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차라리 옷으로 꽁꽁 싸맨 그 인물이 김 씨라면, 낙상 사고 이후 흉이 난 얼굴을 가리려고 한 것이라면, 혹은 사생활 노출이 꺼려져 몸을 숨긴 것이라면 오히려 이해가 됐을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김 씨도 아닌 수행원이 튀는 복장으로 김 씨의 자택 밖을 나선 걸까.

이 후보 측은 "미행하는 취재진에 위압감을 느껴 그런 복장을 한 것 같다"고 했다. 평소에는 그렇게 입지 않지만, 신변 위협을 느낀 것 같다는 것이다.

해당 수행원은 '1호차(후보 부인이 타는 차를 지칭)'를 타고 집 밖을 나섰지만 또 다른 이 후보측은 "1호차 탄다고 전부 김 씨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반박했다.

■ 더팩트 측 "검은 옷 인물 탄 1호차, 자택 앞에서 5분 대기…20명 경찰 출동"

현장 취재를 한 언론사 <더팩트>의 이효균 탐사보도부장은 이 후보의 집이 있는 24층과 25층 사이에서 대기하다 현관문을 나서는 '올블랙 여성'을 봤다고 했다.

집에서부터 똑같이 선글라스와 모자, 외투 차림으로 나섰다는 것이다.

이 부장 말에 따르면 당시 집 밖을 나선 사람은 모두 5명이었다. 검은 옷의 김 씨 추정 인물과 수행원으로 보이는 긴 머리, 짧은 머리 여성 2명, 비교적 평상복 차림의 여성 2명이었다.

검은 옷의 인물과 수행원 2명은 통상 후보 부인이 타는 '1호차'를 탔다. 그전에 짧은 머리 수행원이 평상복 차림 여성 2명을 다른 승용차에 태웠다.

이 부장과 취재진은 몸을 싸맨 인물이 탄 1호차를 쫓았다고 한다. 해당 차량은 김 씨 집을 나서 여의도에 있는 민주 당사로 갔다. 수

행원 중 한 명이 잠시 차량에서 내렸다가 다시 탑승했고, 그대로 분당 자택으로 되돌아 갔다. 더팩트 보도에도 나오는 대목이다.

그러는 동안 김 씨 추정 인물은 차 밖으로 내리지 않았다. 더팩트 측은 1호차보다 먼저 분당 집에 도착해 기다렸다. 김 씨가 차량에서 내리면 인터뷰를 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1호차는 아파트 앞에 도착하고도 5분 가량을 주차가 아닌, 출입문 앞에 정차한 상태로 서있었다. 이 때도 김 씨 추정 인물은 취재진이 기다렸지만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그렇게 대기 상태로 5분이 지난 뒤 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다.

■ 취재진을 '스토킹 미행'으로 경찰 신고한 이 후보측

이 후보측에서는 "수행원이 차량을 따라붙는 취재진을 미행으로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출동해 미행을 제지했고 결국 귀가 조치됐다는 것이다.

신고자가 신원을 공개할 의무는 없기 때문에 경찰을 만난 취재진이 신고자가 김 씨인지, 수행원인 지는 알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때문에 검은 옷의 인물을 김 씨로 끝까지 오해했다는 것이다. 이들이 취재진을 경찰에 신고한 사유는 '스토킹 미행'이었다.

이 부장은 분당서 강력 4팀 정보과와 지구대 순찰차량 등 모두 20여 명이 현장에 출동했다고 했다.

김 씨 자택 앞에서 차량이 5분간 정차해 있는 사이 경찰이 도착했는데, 김 씨 측은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는 것이다.

경찰이 취재진을 제지해 모두 현장을 떠날 때까지 김 씨 추정 측은 모두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이 부장은 일반인이 신고했다면 경찰이 20여 명씩이나 출동했겠느냐고 했다. 경찰이 신고자의 신분을 알고 출동한 것이고, 그 신고자가 대선후보 부인 김 씨일 것이라는 추정에 무게가 더 실리는 정황이었다는 것이다.

사진 촬영 후 추가 취재 과정에서 이 후보 캠프 관계자는 더팩트에 "사진 어떻게 하죠"라며 곤란하다는 기색을 보이더니, 이후 1시간 만에 "김 씨가 아니다"라고 입장을 바꿨다는 것이 이 부장 주장이다.

또 경찰 조사 후 철수할 무렵 취재진 중 한 명이 1호차에서 나와 "뭐 좀 건지셨나"는 취지의 말도 건넸다고 한다.

■ 취재진 따돌리려 변장?…이재명측, 하루 만에 "사진 속 다른 인물이 김혜경"

이 후보측은 SNS 계정을 통해 "가짜뉴스를 바로잡는다"며 더팩트가 보도한 사진 가운데 다른 여성이 부인 김 씨라고 했다.

검은 옷의 여성은 수행원이고, 일반 차량을 탄 선글라스 차림의 카키색 외투를 입은 여성이 김 씨라는 것이다. 보도가 화제를 끈 지 하루가 지나서였다.

결론적으로 김 씨는 검은 옷으로 싸맨 인물과 함께 집 밖을 나왔지만, 취재진이 검은 옷 인물을 김 씨로 추정해 따라붙은 사이, 자신의 관용차인 1호차가 아닌 일반 차를 타고 현장을 유유히 떠난 셈이 됐다.

의도적 변장으로 취재진을 따돌린 것이냐는 물음에 이 후보 측은 "그것까지는 알 수 없다"며 "검은 모자와 선글라스를 빼면 특이할 것도 없는 복장"이라고 했다.

더팩트의 이효균 부장은 "검은 옷의 인물이 김 씨가 아니었다면 취재진이 따라붙었을 때부터 본인이 김 씨가 아니라고 적극 해명했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만약 검은 옷 인물이 정말 김 씨가 아니라면, 이 모든 김 씨 측의 말과 행동은 취재진을 의도적으로 속이려 김 씨 대역을 써가며 연기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 아직도 남는 의문
① 수행원이 왜 '올블랙'으로 신분 가렸나?

이 후보측이 공개한 '진짜 김혜경 씨'는 특이할 것도 없는 보통 중년 여성의 복장이다.

선글라스를 쓰긴 했지만 '올블랙 여성'에 비하면 의도적으로 신분을 가리려고 애쓴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반면 '올블랙 수행원'의 차림은 언제 어느 장소에 있더라도 한 번 더 보게 되는 '시선강탈' 패션이다.

수행원이 왜 후보 부인보다 더 이목을 끄는 차림으로 후보 집을 함께 나섰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페이스북에 "김 씨와 수행원들이 불안증세를 호소하며 스토킹으로 법적 대응에 나설지 검토 중"이란 언론보도를 공유하며 이같이 지적했다.

"과잉취재가 예상되니 일부러 수행원을 그림자 무사(대역) 또는 디코이(미끼)로 먼저 보냈다고 하는 것이네요. 디코이(미끼)를 일부러 내세운건데 수행원이 불안증세는 왜 보이는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② 김혜경 씨는 당시 그곳에 없었다?

이 후보 배우자실장인 이해식 의원은 16일 오전 기자와의 통화에서 "더팩트가 김 씨 추정 인물을 쫓을 당시 김 씨는 그곳에 없었다"고 했다.

다만 전후 언제 외출을 했고 어디로 갔는지 등은 사생활 영역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반나절도 안 돼 나온 이 후보측 공식 해명은 '사진 속 다른 여성이 김 씨'라는 것이었다.

이후 이 후보측은 통화에서 "김씨가 같은 날 나간 것이 맞다" 했다. 이 의원과 후보 측이 정보 공유가 제대로 안 된 것인지, 해명이 오락가락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③ 대선후보 부인 수행원이 '스토킹 미행' 신고?

낯선 외부인으로부터 미행을 당해 위협을 느끼는 국민 누구나 경찰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김 씨는 민주당 대선후보의 배우자로 여러 수행원들과 함께였다. 신고자도 후보 가족과 함께 움직이는 사람으로 추정된다.

이 후보나 김 씨의 동의 없이 경찰 신고를 독자적으로 할 수 있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그렇다면 이 후보 측은 취재 차 따라붙는 취재진을 스토킹 미행으로 여길 만큼 위협을 느꼈던 것일까.

대선주자 신분이고 또 그의 가족이라면, 참모 등의 선에서 원만하게 처리할 수는 없었을까.

경찰도 취재 활동을 스토킹으로까지 볼 수는 없다는 판단으로 현장에서 돌려보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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