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대통령의 기자회견

강상구 기자 | 2022.08.12 13:24

과거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잡히면 가장 먼저 기자단 회의가 열렸다. 질문할 기자를 사전에 결정하기 위해서다. 생중계를 하기 때문에 첫 질문은 방송사 기자가 하고, 종합일간지, 경제지, 지방지 사이의 숫자 배분도 이뤄졌다. 그리고 질문 내용도 기자들끼리 미리 조율했다. 경제지는 경제 문제를, 지방지는 지방 현안을(때로는 지방 민원을) 질문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중복 질문을 방지하기 위한 조율 과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청와대에 질문을 사전에 전달하는 중간 절차가 됐다. 준비된 질문과 준비된 답변이 오가는 기자회견이었다. 질문의 취지와 어긋나거나 불충분한 답변이 나와도 보충 질문이나 추가 질문은 없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 때 기자회견의 모습은 크게 바뀌었다. TV 화면으로 보기에, 편안한 분위기에서 자유로운 문답이 오갔다. 하지만 여전히 핵심을 비켜간 답변이나 심지어 동문서답이 나오더라도 보충질문과 추가 질문은 없었다. 대통령의 답변이 미진함을 정중하게 지적한 기자에게는 어마어마한 악플이 몰려 부모가 '외출을 자제하라'고 걱정할 수준이었다. 화면에서의 모습과 달리 대통령도 기자회견이 편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기자회견 횟수는 임기 후반으로 가면서 점점 뜸해졌다. 대신 '국민과의 대화'라는, 이름은 거창하지만 짜여진 각본에 따라 진행되는 소통 방식을 선호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기자들은 '회견'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지 않고도 매일 아침 대통령에게 질문을 할 수 있게 됐다. '도어 스테핑'이라고 하는, 언론계에서도 외교부 출입기자들만 쓰던 용어를 전국민이 쓰도록 만든 출근길 문답이다. 즉석에서 나오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주저함이 없었고, 대통령의 답변은 거침이 없었다. 참모들이 사안별 조언을 안 한 것일까, 대통령이 참모의 훈수를 거부한 것일까 궁금할 정도로 솔직한 답변이 매일매일 이어졌다. 부적절한 표현으로 논란을 일으켰지만, 기자의 입장에서 질문 사안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이 무엇인지는 명쾌하게 알 수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오는 17일 취임 100일을 맞아 기자회견을 방안을 추진한다고 한다. 아직 기자회견 여부도 최종 확정되지 않았고, 어떤 형식과 방식으로 할지도 논의중이라고 한다. 일부 참모는 지지율이 연일 추락하는 가운데 기자회견 분위기도 자칫 추가 실점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을까 고민하는 모양이다. 딱히 기자회견을 하지 않아도 매일 아침 기자들을 만나고 있다는 명분도 있다. 하지만 몸 사리기에 바쁜 모습은 보기 딱하다. 기자회견을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면, 취임 100일을 지지율 반전과 국정동력 회복의 계기로 삼겠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자면 고민의 대상이 기자회견의 형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불통' 대통령의 뒤를 이은 문재인 전 대통령은 '소통'의 모습을 연출하는 것만으로도 기자회견의 효과를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 문 전 대통령에게는 형식이 곧 내용일 수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더이상 '쇼통'은 통하지 않는다. 기자회견에서 전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에 집중해야 한다. 형식보다 내용이 필요한 시점이다.

성공한 기자회견은 문제의 핵심을 드러낸다. 여성 편력이 드러난 빌 클린턴은 기자회견에 동석한 부인 힐러리의 지지 발언 덕분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클린턴은 도덕적이지도, 솔직하지도 않은 사람이었지만, 적어도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꿰뚫어본 사람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앞두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도 지지율 추락에 담긴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 헤아리는 일이다. 혹자의 말처럼 '대통령이 되어 무엇을 하겠다는 의지는 보이지 않고, 대통령이 된 것으로 모든 목표를 이룬듯 보이는' 그 자신의 태도가 문제의 핵심인지, 끝없이 가십의 주인공이 되는 부인 김건희 여사가 문제의 핵심인지, 기소도 안 된 대표를 끌어내릴 정도로 권력욕은 넘치면서 인사는 늘 뒷말을 낳는 참모들의 실력없음이 문제의 핵심인지 냉정하게 되새기고 답을 찾아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은 이미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선택하고 결정했다. 지지율 하락은 야당의 주장처럼 '탄핵'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말라는 회초리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제 국민의 회초리에 응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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