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Talk] "호기심에 시작했는데"…어느 마약 투약자의 후회

한지은 기자 | 2022.10.20 16:24

"○○○씨 안 계신가요?"

19일 오후 2시 30분을 조금 넘긴 시각, 위아래로 밝은 회색의 트레이닝복을 입은 30대 후반의 남성이 서울동부지법의 한 법정으로 들어왔습니다.

마약 혐의를 받는 A씨입니다.

방청석에 가방을 내려놓은 뒤 헐레벌떡 피고인 석으로 향했습니다.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을까?’란 막연한 기대로 시작

20년 전 고향을 떠나 서울로 왔다는 A씨는 성인이 되면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 시작했습니다.

잠도 많고 규칙적인 생활을 견디지 못해 구하는 일자리마다 6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둬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해외에 살다 온 한 지인이 A씨에게 솔깃한 제안을 합니다.

"외국에서는 대마도 약이야."

지쳐있던 A씨는 인터넷 검색창에 '대마'를 입력했습니다.

A씨가 대마초를 처음 피우기 시작한 계기입니다.

■조금씩 커지는 호기심, 필로폰까지 접해

머리가 아프거나 몸이 힘들 때, 잠이 잘 오지 않을 때 한 번씩 대마를 흡입했습니다.

멍해지는 기분을 느낀 A씨의 몸에선 더 심한 자극을 요구했습니다.

"필로폰은 어떨까?

유명인들이 필로폰을 투약하다 적발됐다는 소식은 A씨의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SNS를 통해 필로폰을 검색하던 A씨를 SNS 친구가 유혹했습니다.

"내가 필로폰 가지고 있는데…"

■"죽을 것 같아서 자수했어요"

A씨는 2020년 4월, 서울 모처에서 B씨를 만나 필로폰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중독이나 위험성은 모르겠고, 그냥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호기심에 응했다"는 게 A씨의 얘기였습니다.

이후 B씨 주도로 오피스텔 등지에서 2~3명씩 모여 필로폰을 투약했습니다.

이런 생활이 익숙해질 때쯤, 불현듯 '이러다간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B씨가) 나에게 몰래 평소보다 많은 양의 필로폰을 투약한 적이 있었어요. 어지럽고, 정신도 못 차리겠고…”

인근 파출소로 달려가 자수했습니다.

자신이 소지하고 있던 대마까지 경찰에 모두 제출했지만, A씨는 불현 듯 필로폰 투약 당시의 느낌이 떠올랐습니다.

"하면 안 된다고 스스로 다짐을 해도 뜨문뜨문 생각이 나는 거죠."

SNS로 구매하고, 던지기 수법으로 받고, 투약하고, 자수하고. 악순환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런 생활을 반복하던 A씨는 결국 올해 초 구속 기소됐습니다.

■마약 투약으로 사라져버린 인생에 '후회'

구치소엔 마약 초범부터 유통책, 20년 이상 마약을 장기 투약한 일명 '뽕쟁이'들까지, 다양한 마약사범들이 있었습니다.

이들 중 15년 간 마약을 투약했다는 한 수감자는 "아들과 마약을 끊기로 약속했다"며 A씨를 데리고 매일 아침 운동을 했다고 합니다.

"'마약을 했던 지난 15년동안 내 인생은 없었다'는 그분의 말에 고민이 많아지더라고요."

A씨는 "처음엔 '안 걸렸다면 계속 했을텐데'라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만약 안 걸렸다면 지금보다 상황이 더 악화됐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생 망치는 길, 근처에도 가지 말아야 합니다.

"똥을 찍어 먹어봐야 똥인 줄 알고, 매를 맞아봐야 아픈 줄 아는 사람이 있어요. 저 같은 사람이죠.”

법원은 A씨에게 징역 2개월에 집행유예 1년, 보호관찰 명령과 압수물 몰수를 선고했습니다.

A씨는 선고 전날부터 밤을 새워 반성문을 썼고, 선고가 내려진 직후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재판장님. 다시는 구치소에 가는 일 만들지 않겠습니다."

이후 A씨는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부모님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정신과 치료도 받으며 적응해나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익명을 요청한 A씨. 이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습니다.

"마약이요? 이제 절대 안 합니다. 인생이 완전히 망하는 걸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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