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욱 앵커의 시선] 까마귀 고기를 드셨습니까

신동욱 기자 | 2023.03.29 21:52

시험관에 물을 반쯤 채우고, 코르크에 매단 고기 조각을 띄워 놓았습니다. 까마귀가, 앞에 놓인 추를 물어 시험관에 하나둘 집어넣습니다. 수위가 점점 올라가 고기가 부리에 닿을 만큼 뜨자 냉큼 먹습니다.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라는 속담이 무색합니다. 건망증이 심한 사람을 놀리는 말인데, 사실 까마귀는 영특합니다.

노년에 정신과 진료를 받던 대처 영국 총리가 "내 정신은 말짱하다"며 아버지가 늘 하시던 말씀을 욉니다. 

"생각을 조심하라,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하라, 행동이 된다. 행동을 조심하라 습관이 된다…" 

헛소리하는 사람들이 새겨들을 말입니다. "포도청 문고리를 뺀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행실을 조심하랬더니 도리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짓을 하고 다니는 사람을 가리키지요. 

단 10분밖에 기억 못 하는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린 수사관이 범인을 쫓습니다. 기억을 간직하려고 사진과 메모를 남기다 못해 문신까지 합니다.

"중요한 단서는 종이보다 몸에 새겨야 해"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미국에 가서 "전광훈 목사께서 우파 진영을 천하통일 했다"는 강연을 했다가 사과했습니다. 전 목사 예배에 참석해 5.18정신 헌법 수록에 반대했다가 사과한 지 보름 만입니다.

김 최고위원은 예배 때 전 목사와 특정 지역표를 거론하며 듣기 거북한 말을 주고받았다지요. 전 목사가 "내가 2백 석 만들어주면 당에서 뭐를 해줄 거냐"고 묻자 "최고위에 가서 원하시는 걸 관철하겠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전 목사에게 빚이라도 진 건 아닐 텐데 말입니다.

그래 놓고 "앞으로 조심하겠다"고 사죄했지요. 그런데 미국 가서 또 전 목사를 칭송해 우파 진영 전체를 모독했습니다. 그러더니 또 "매사에 자중하겠다"고 했습니다. 단기 기억상실증이 걸려도 단단히 걸린 모양입니다.

그런데 국민의힘 지도부는 "신중하라" "평하는 게 적절치 않다" "언어 구사 감이 떨어진 듯하다"며 우물우물 넘어가려는 품새입니다.

전당대회 후 3주 내리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민주당에 역전당한 게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조금 여유가 생기면 영락없이 나오던 바로 그 버릇들 기억하실 겁니다.

지도자도 없이 까마귀가 모인 것처럼 지리멸렬한 조직을 오합지졸(烏合之卒) 이라고 합니다. 거기서 까마귀 오(烏)자는, 새 조(鳥)자에서 한 획을 뺐습니다.

온통 새까만 게, 눈이 분간이 안 돼서 획을 뺀 거라고 합니다. 게다가 음산한 울음소리까지, 영 달갑지 않은 새라는 얘기지요.

보기엔 멀쩡한 사람이 하고 다니는 황당한 말을 가리켜 "까마귀 아래턱 떨어지는 소리" 라고 합니다. 듣자 듣자 하니, 까마귀가 듣기에도 오죽 어처구니가 없으면, 놀란 턱을 다물지 못하겠습니까.

3월 29일 앵커의 시선은 '까마귀 고기를 드셨습니까'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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