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양의 비규제지역] "왜 우리 아파트 이름만 공개하나요?"

정수양 기자 | 2023.08.30 11:00

철근 누락이 확인된 경기도의 한 신혼희망타운을 방문했을 때 일입니다.

거기서 만난 한 입주자가 제게 말했습니다.

"왜 우리 아파트 이름만 공개하나요?"

이 아파트가 졸지에 '철근 누락' 아파트로 불린 건 지난 7월 31일이었습니다.

지난 4월 무너진 검단 아파트 외에 '철근 누락' 아파트가 더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LH와 국토부는 철근이 누락된 아파트를 공개했습니다.

제가 만난 '철근 누락' 아파트 입주자는 졸지에 '순살 아파트'에 살게 된 것도 속상한데, 이후 국토부의 행보는 더욱 실망스럽다고 했습니다.

국토부는 무량판 구조로 지어진 민간 아파트 200여 곳을 조사한다고 하면서 재산권 보호 등을 이유로 그 아파트는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 입주자는 민간 아파트와 다른 대우를 받는 걸 보고 'LH 아파트에 사는 게 더욱 원망스러워졌다'고 했습니다.

다른 신혼희망타운 입주민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아파트를 분양받으면 누구나 이 아파트를 통해 자산 증식을 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이미 '철근 누락' 아파트로 알려지면서 자산 증식의 기회마저 쉽지 않게 됐습니다.

"이제 우리 아파트 이름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누가 이사 오겠냐"고 속상한 마음을 토로했습니다.

물론 '철근 누락' 아파트를 공개한 LH도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닙니다.

만약 공개하지 않았다면 더 큰 혼란에 빠졌을 겁니다. 아쉬운 건 '철근 누락' 아파트 입주민에 대한 배려입니다.

졸지에 '철근 누락' 아파트에 산다는 오명이 씌워진 입주민들을 위한 확실한 보상안도 함께 마련했어야 할 겁니다.

LH가 철근 누락 아파트를 분양받은 입주민들을 위해 내부적으로 마련했던 보상안(8월 23일 기준)은 위약금 없는 계약 해제권과 청약 통장 부활, 당첨자 명단 삭제, 이사비 지원 등이 전부였습니다. 집을 사고 팔아본 분들은 아실 겁니다.

자산 조건에 맞는 집을 알아보고, 잔금을 치르기 위해 서류를 준비하고 은행을 들락날락거리며 대출을 일으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 인지를요. 한 입주민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이미 아파트 시공도 다 했고, 대출도 승인이 끝났는데 해제하고 이사 가라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고요.

이미 분양을 받고 입주한 입주민들에게 계약 해제권을 부여하고 청약 통장을 부활시켜주는 게 크게 와 닿지 않는 보상안이라는 겁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2일 당정협의 때 나온 입주민에 대한 손해배상도 이번 보상안에선 제외됐습니다.

LH는 "손해배상은 법원의 판결을 통해 결정되는데, 이를 보상안에 넣게 되면 배임 소지가 있다"며 제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결국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선 입주민들이 LH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데 과연 이게 현실적일까요? 입주민들이 "말도 안 된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와 LH 아파트 철근누락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이권 카르텔 타파', 'LH 개혁'이었습니다.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신혼희망타운에 당첨돼 기뻤던 마음이 어느새 LH에 대한 배신감으로 바뀌어버렸다는 입주민들의 마음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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